“내가 인물에게 제공한 최선은 어디에 이를지 잘 모르는 앞으로 길게 뻗은 길을 바라보게 두는 것이고, 그들이 미래의 여행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는 독자가 결정하게 한다. 이제 나는 그 독자, 그리고 그 여행자들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4장 ‘이야기의 끝’ 중)죽음을 목전에 둔 이가 잠시 의식이 맑게 돌아와 정신을 차리는 것을 회광반조(回光返照)라 한다. 일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꺼져가던 생의 불꽃이 다시금 타오르는 모습은 실로 경이(驚異)한 일이다. 팔순 노(老)작가가 최후의 시간 속에서 써 내려간 필법 또한 삶의 진면목을 추적하는 예지와 통찰로 번뜩이던 것이다. 부커상, 메디치상 등 세계 문학상을 섭렵해 온 영미문학의 대가 줄리언 반스(사진)의 새 장편소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반스의 공식적인 마지막 작품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생의 순간순간을 반추하는 자전소설이자, 삶과 죽음 사이에서 존재의 본질을 고찰한 관념소설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동안 소설가로서 현실의 갈등을 작품에 투영해 타개책을 모색해 왔지만, 어느덧 노화와 병마에 이르러 스스로가 알 길 없는 서사 속에 갇히고 말았다. 목적지도 귀갓길도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게 된 화자의 불안한 예감을 다독이는 것은 ‘기억’뿐이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기억을 부여잡아 옛이야기를 들춰내고 시시콜콜한 묘사와 진위 판별로 ‘삶의 진실’을 더듬어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억마저도 윤색과 왜곡을 거친다는 점에서 화자에게는 여전히 불완전한 동아줄로 인식된다.기억의 한계와 생의 유한성에 직면한 화자의 선택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가능한 한 오래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는 “내가 나의 관찰이 옳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되는 시점까지, 나 자신의 자아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점까지” 초지일관으로 사물을 통찰하고 자신을 성찰하겠다고 선언한다.
철학적인 주제를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나가는 서술 기법 탓에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반스의 역대 소설들이 그러했듯 지적 만족감과 흥미로운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건강, 시사, 학술 등 교양지식의 성실한 전달부터 창작의 고통을 자세하게 고백하는 인간미까지 책 전체가 재치와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망가짐을 자처하는 농담 어린 투병기나 육체적 교감 등 청춘남녀의 애정 다툼을 집요하게 설파하는 대목에선 슬며시 웃음도 나온다. 책은 단 하나의 질문이자 인류의 오래된 화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도착이 없는 떠남, 반스는 그 처연한 작별의 시간에 가까워지면서도 신파나 훈계로 기울지 않고 평온한 시선을 유지하며 거장답게 종장(終場)을 마감했다.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 기억은 때로 비극적이지만, 잠깐뿐이라도 사랑과 희망과 행복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살아간다. 모두가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그 자리에도 남아 숨 쉬는 그것, ‘추억’은 영원한 현재이기에.
신승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