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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마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A는 일찌감치 가장이 돼 동생 B를 헌신적으로 돌봤다. 동생 B는 학창 시절부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탰고,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요리 재능으로 유명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은 B는 지방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2025년 1월 1일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B가 미혼이고 상속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다면, 그의 재산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우리 민법은 상속인을 직계비속(자녀), 직계존속(부모), 형제자매, 4촌 이내의 방계혈족 순으로 정하고 있다. B에게는 직계존속인 아버지 X가 생존해 있으므로, B의 재산은 평생 B를 뒷바라지한 형 A가 아니라 어린 시절 B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 X가 전부 상속받게 된다.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방치하고 전혀 부양하지 않아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음에도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에 비춰 쉽게 납득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도입된 제도가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을 제한하는 상속권 상실 제도, 일명 '구하라법'이다.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 개시 건에 소급 적용
상속권 상실 제도는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시행일 이전이라도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라면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B의 사례처럼 비록 법 시행일 전에 사망한 경우라도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됐다면 개정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있다.
상속권 상실 제도를 통해 X의 상속권을 제한하려면,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이 그 사람이 상속인이 됐음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해야 한다. 다만 위 사례처럼 공동상속인이 없거나, 공동상속인 모두에게 상속권 상실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속권 상실 선고가 확정되면 상속인이 될 사람(후순위 상속인)이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2026년 1월 1일 제도 시행 전에 이미 상속이 개시된 경우라면, 법 시행일부터 6개월 이내에 청구하면 기간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된다.
가정법원은 상속권 상실을 판단할 때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는 원인이 된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및 그 밖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피상속인이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뿐 아니라 피상속인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도 상속권 상실 사유가 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행위를 어떤 기준에서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 '중대한 범죄행위', '심히 부당한 대우'로 인정할 것인지는 앞으로 판례를 통해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생전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 의사 표시도 가능
한편 B가 생전에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X의 상속권을 상실시키겠다는 의사를 표시해두는 방법도 가능하며, 이 경우 유언집행자가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게 된다. 유언에 의한 상속권 상실의 경우 상속권 상실 사유의 범위가 더 넓어 '피상속인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뿐 아니라 '피상속인의 배우자나 직계비속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도 상속권 상실 사유에 포함될 수 있다.
상속권을 상실한 X가 유류분을 주장하는 것이 가능할까? 유류분은 법이 일정 범위의 상속인에게 보장하는 최소한의 상속분으로, 유언 등으로 상속재산 분배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경우에도 인정된다. 그러나 유류분은 상속인 지위를 전제로 인정되는 권리이므로, 상속권 상실 선고가 확정돼 상속인 지위를 소급해 상실하게 되면 유류분 권리자로서의 지위도 함께 사라진다. 따라서 X는 유류분도 주장할 수 없으므로, B가 남긴 재산은 온전히 A에게 상속된다.
직계존속 외 상속인에 대한 제도 확대 논의 중
현행 상속권 상실 제도는 직계존속이 상속인이 되는 경우만 예정하고 있는데, 상속인이 배우자, 직계비속, 4촌 이내의 형제자매인 경우에는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이나 '중대한 범죄행위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하더라도 상속권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인지 문제될 수 있다. 우리 민법에서 배우자, 직계비속, 4촌 이내의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별도로 상속권 상실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계존속 이외의 법정상속인은 상속결격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상속인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2024년 4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유류분 관련 규정 중 일부에 대해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유류분 상실 사유를 규정하지 않아 부양의무를 위반하거나 패륜행위를 일삼은 사람에게도 유류분을 인정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025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을 하도록 주문했는데, 현재까지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인 상태다.
유류분 상실 사유를 도입하는 방식을 두고 직계존속 이외에 나머지 유류분 권리자인 직계비속, 배우자에 대해서도 상속권 상실 제도를 확장할지, 상속권은 유지하되 유류분 상실 제도만 도입할지, 양 제도를 모두 도입할지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 개선입법의 방향에 따라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사건에서는 직계존속뿐 아니라 직계비속과 배우자 등에게도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유류분 또는 상속권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전 유언·신탁 활용이 가장 안전한 방법
상속권 상실 제도는 미성년 자녀를 버린 부모가 아무 제약 없이 자녀의 재산을 상속하는 부조리를 제도적으로 시정할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나쁜 상속인에 대해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고 인용 판결이 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감정적 소모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전에 미리 상속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다. 유언이나 신탁을 활용해 자신의 재산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승계할 것인지를 미리 명확하게 정해 둔다면 상속재산이 자신의 뜻에 따라 분배될 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들이 법정 다툼에 휘말리는 비극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