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손에 쥔 50억원은 기회이자 고민이었다. 40대 초반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어떻게 굴릴지 본격적인 자산 운용의 갈림길에 섰다. 단기간에 거액의 유동성을 확보하다 보니 이번에는 단순한 자산 보존이 아니라 시장 수익률을 확실히 넘어서는 투자를 해보고 싶었다.
A씨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증시가 2024년부터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 역시 제도권 금융자산으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었다. 반면 현금성 자산과 보수적 운용만으로는 자산 증식 속도가 시장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만 단기 급등 이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작정 테마에 베팅하는 방식은 피하고 싶었다.
A씨의 포트폴리오 설계는 올해 1월 시장 환경을 기준으로 이뤄졌다. 시장 상황은 △코스피지수 4800 수준 △금리 인하 사이클 진입 △AI 산업의 실적 가시화 △원·달러 환율 변동성 확대 등 복합적인 변수를 반영했다. 하락장 방어력과 공격성을 동시에 갖춘 구조를 목표로 삼았다. 핵심 원칙은 두 가지였다.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 비중을 조절해 리스크를 낮추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절세 장치도 함께 마련했다.
구체적인 자산 배분은 명확했다. 전체 50억원 가운데 절반은 장기 우상향을 기대할 수 있는 글로벌 인덱스 자산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성장 테마·가상자산·안전자산으로 분산했다. 포트폴리오의 기둥이 되는 핵심 인덱스 자산은 S&P500과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미국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였다. 장기 투자에서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고, AI 수혜 기업을 두루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선택지로 평가했다. 환율 흐름과 환헤지에 드는 비용을 고려해 환율을 따로 막지 않는 상품을 선택했다.
초과 수익을 노리는 성장·테마 자산에는 AI, 반도체, 로봇 중심의 ETF를 편입했다. AI 밸류에이션 부담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지만, 올해 실적이 다시 한 번 시장 기대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로봇, 방산, 조선,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의 상위 기업을 담은 국내 비과세 ETF를 함께 담아 특정 테마 쏠림에 따른 리스크를 낮췄다.
가상자산은 전체 자산의 10% 수준으로 편입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재정 확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서 가상자산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단기 변동성은 크지만,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심으로 분할 매수해 장기 투자 관점에서 접근했다. 구성은 비트코인 70%, 이더리움 30%다. 발행량이 제한된 비트코인과 실물자산토큰화(RWA) 및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이더리움의 특성을 동시에 반영했다.
안전자산과 현금성 자산은 전체의 20%로 유지했다. 금과 머니마켓펀드(MMF)를 활용해 지정학적 리스크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비했다. 시장 조정 시 추가 매수를 위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주식이나 가상자산 비중이 급격히 확대될 경우 일부 수익을 실현해 이 영역으로 되돌리는 리밸런싱 구조도 함께 설계했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는 공격적이면서도 통제된 운용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노태섭 하나은행 올림픽선수촌PB센터 골드PB팀장은 “영앤리치 고객일수록 단순히 수익률만 좇기보다, 변동성을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장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정기적인 점검과 리밸런싱, 절세 전략을 병행해야 장기적으로 성과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