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4년째 미국에 뒤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9%로, 미국(2.4%)보다 0.5%포인트 낮습니다. IMF의 작년 10월 리포트에선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 격차가 0.3%포인트 였습니다. 격차가 더 커진 겁니다.미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우리보다 16배가량 큰 세계 최고 경제대국입니다. 몸집이 크면 움직임도 느리기 마련이죠. 당연히 미국의 성장률이 우리를 추월하는 경우는 이례적입니다. 그런데 이젠 새로운 표준(New Normal)이 되고 있지 않나 걱정입니다. ‘코끼리 미국 경제’가 우리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면 경제 규모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미국 경제의 활황세 영향이 큽니다. 한편으론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약한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선진국 평균 전망치(1.8%)와 비슷하지만, 신흥국·개발도상국 평균(약 4.2%)에는 훨씬 못 미칩니다.
한 나라의 경제는 양질의 일자리 확대, 국방 분야 등의 재정 수요 대처,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위해 꾸준히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계층 갈등이 심화하고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죠. 우리나라 성장률이 부진한 현상과 이유를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연1%대 韓성장률…4년째 미국에 뒤처져
경제 기초체력 키워야 증시 활황세 지속
경제 기초체력 키워야 증시 활황세 지속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보면 마치 미국이 신흥국이고, 한국이 선진국인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올해 전망치 격차 ‘0.5%포인트’를 작다고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16배나 크기 때문에 이 정도 성장률 격차도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죠. 더욱 중요하게는 미국의 왕성한 경제 활력이 어디에서 샘솟는지, 우리는 어떤 병목(bottle neck)에서 경제 성장세가 꽉 막혀 있는지 진지하게 되묻게 해줍니다.“코끼리는 뛰는데…”
‘신흥국 고성장, 선진국 저성장’이란 공식이 깨진 것은 아닙니다. 앞서 봤듯, 올해 신흥국 성장률은 평균 4.2%, 선진국 평균은 1.8%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인도가 6.5%로 높은 수준이고, 중국은 4.2%대입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이 2.4%라는 두드러진 성장세를 구가할 전망이어서 신흥국과 선진국의 표정이 달라 보이는 겁니다.
물론 ‘세계경제의 기관차’인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성장률이 점차 둔화하고 있긴 합니다. 공통적으로 인구 고령화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보호무역주의 발호로 인한 글로벌 교역 둔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되는 재정적자와 민간 부채 급증 문제 등이 성장률을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위안 삼을 일은 아닙니다. 우리와 수출 무대에서 경쟁하는 대만의 경제 성장세는 여전합니다. 대만은 작년 7.4% 전후의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4%대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어갈 전망입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작년 대만이 우리나라를 추월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경쟁국도 이런 상황이어서 “코끼리(미국 경제)가 우리보다 빨리 달린다면 우리 경제엔 미래가 없다”는 지적은 예사로 들리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금리 역전’
한·미 간 역전은 성장률뿐이 아닙니다. 중앙은행 기준금리도 미국이 더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은 자본 축적도가 높고 금융시스템이 발전해 금리가 신흥국보다 낮은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는 연 3.5~3.75%로, 우리나라(연 2.5%)보다 1.00~1.25%포인트 높습니다. 2010년대 이전엔 우리나라 금리가 미국보다 높았지만, 2023년 중반부터 이런 ‘금리 역전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低)금리는 기업의 투자를 자극하기 때문에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외환시장이 불안할 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은 한국에서 외화가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는 떨어지는 문제를 낳습니다. 금리가 낮으면 각종 투자의 수익률도 함께 낮아집니다. 투자의 메리트가 적으니 한국에서 돈이 떠날 수밖에 없어요. 채권의 경우 금리가 낮으면 가격은 높다는 얘기인데요, 그만큼 국내 채권의 투자 매력이 떨어져 해외 채권으로 돈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자본의 해외 유출은 국내 유동성을 감소시켜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고 기업의 주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본 유출로 달러 수요가 늘고 원화 수요는 감소해 환율을 오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높은 환율 수준이 고착될 위험성이 큽니다.
펀더멘털을 봐야 할 때
경제성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입니다. ‘코스피지수 5000 돌파’로 요약되는 국내 증시의 강한 시황이 펀더멘털과 따로 놀 수는 없어요. 코스피지수가 작년 한 해 약 75% 상승했고, 연초에도 강한 상승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 증시 가운데 가장 뜨겁죠. 그러나 반도체 호황 주기(슈퍼사이클)에 증시가 앞서 과열되는 양상이기도 합니다. 우리 경제는 내수시장과 서비스업 침체, 건설업 투자 부진으로 저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 전체가 아닌,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기업의 실적 호조에만 지탱하고 있는 거죠. 이래서는 증시도 강세를 계속 유지하기 힘듭니다. 증시는 경제의 거울일 뿐입니다. 펀더멘털을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NIE 포인트
1. 한국·일본·대만·중국의 최근 10개년 경제성장률을 비교해보자.2.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왜 위험한지 알아보자.
3. 주식시장과 실물시장은 다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기록적인 저성장은 구조개혁 미룬 대가
혁신역량 살려 생산성 높이는 노력 필요
혁신역량 살려 생산성 높이는 노력 필요
경제성장률과 관련한 중요 개념 중 하나는 잠재성장률입니다. 이는 한 나라가 과도한 물가상승 없이 장기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 최대치를 말합니다.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으면 수요와 시장이 과열됐다는 얘기여서 물가상승 압력이 커집니다. 반대로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으면 공급과잉 상황이어서 실업 증가와 물가하락이 나타날 수 있어요.‘2040년대 0%대’ 잠재성장률
잠재성장률을 계산하는 데 특별한 공식이 있는 건 아닙니다. 경제 연구기관들이 노동력, 자본, 기술 수준 등 여러 요소를 가지고 생산함수 접근법, 시계열 분석법 등의 통계 기법을 활용해 추정합니다.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저조한 것은 잠재성장률 하락에서도 확인됩니다. 1980년대 7~9%, 1990년대 5~7%로 높았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이후 계속 낮아져 20024~2026년엔 2%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2030년대엔 이 수치가 1%대, 그리고 2040년대엔 0%대로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진국 중 최저 수준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다분합니다.
자본수익률 낮아 ‘해외로 해외로’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이렇게 낮아지는 이유는 뭘까요? 크게 네 가지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때문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된다고 짚는 대목입니다. 둘째는 노동생산성·총요소생산성 등 생산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총요소생산성이란 노동, 자본, 원자재 등 ‘눈에 보이는’ 생산요소 외에 기술개발이나 노사관계, 경영혁신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 요소를 말합니다.
셋째는 국내 투자의 둔화와 해외 투자의 증가입니다. 앞서 설명한 요인들로 인해 국내 자본수익률이 떨어지자 일본처럼 국내 대신 해외에 투자하는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성장을 둔화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옵니다. 마지막으로 비효율적인 경제구조가 개선되고 있지 않습니다.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부동산에 쏠린 가계 자산과 막대한 가계부채,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대·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등이 여전히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개혁이 미뤄지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시장과 혁신을 중심에 두는 미국
이번엔 반면교사로 삼을 미국 고성장의 비결을 살펴볼까요? 미국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쇠퇴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연간 2~3%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무엇보다 기술혁신과 이를 통한 생산성 제고에 성공했습니다. 에릭 브린욜프슨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미국의 생산성을 1~2%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2023~2025년 미국의 총요소생산성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엔비디아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들이 AI 관련 투자를 크게 늘린 것이 최근 국내총생산(GDP) 증대에 큰 효과를 낸 겁니다. 다음으로 유연한 노동시장의 존재입니다. 기업의 여건에 맞는 고용 조정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면 경기 변동에 맞게 기업이 구조조정을 시행할 수 있고, 경기 회복기에 높은 성장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지로서 확고한 우위를 다진 점입니다. 미국의 스타 애널리스트인 댄 아이브스는 “미국 주식시장이 세계 자본의 60%를 흡수하며 ‘혁신 자금 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월가를 움직이는 금융인 중 한 사람인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업자도 “미국의 금융화와 혁신 생태계가 중국의 제조업 모델을 압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새로운 기술·경영혁신이 기득권 보장으로 인해 사장되고 마는 사회, 기업 활동을 옥죄는 경제 규율의 확대, 말로만 강조하는 총요소생산성 등이 여전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은 누가 이끌 수 있을까요?
NIE 포인트
1. 잠재성장률과 실제 성장률의 관계에 대해 공부해보자.2. 총요소생산성이 왜 중요한지, 국가별 수준은 어떤지 알아보자.
3. 혁신이 사장된 최근 사례를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