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11년 8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넷스케이프의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고 있다(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무형의 소프트웨어는 거대한 산업이 됐고 우리는 정말로 모든 것이 앱과 클라우드로 해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요.

하지만 2026년 현재,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인공지능(AI)이 소프트웨어를 먹어 치우고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섹터는 1월 한 달 간 15% 급락했고, 대장주 마이크로소프트는 29일(현지시간) 하루 만에 10% 폭락하며 2020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주가 부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했습니다. 미국 최대 소프트웨어 섹터 ETF인 IGV는 최근 6개월 간 19% 하락해 41% 오른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와 극명한 대조를 보였습니다. AI가 사람처럼 알아서 소프트웨어 작업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시대가 다가오면서 전통적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들이 설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런 추세는 올 들어 더 가팔라졌습니다.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웍(Cowork)',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자율형 AI 에이전트 '몰트봇(구 클로드봇)'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이제 SaaS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지속 가능한지 의구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판 자비스' 몰트봇의 습격
몰트봇은 오픈소스 자율형 AI 에이전트입니다. 원래 클로드봇(Clawdbot)으로 등장했는데, 앤스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와 발음이 같다 보니 상표권 문제로 며칠 만에 이름을 바꿨습니다. 몰트봇은 폐쇄형 호스팅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의 로컬 기기에서 실행됩니다. 그래서 사용자의 컴퓨터 시스템 안에 있는 파일, 터미널, 브라우저에 접근해 직접 업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챗GPT, 제미나이 같은 AI 챗봇은 물론 클로드 코웍도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만, 몰트봇은 먼저 말을 거는 선제적인 행동까지 한다는 점도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기다리던 메일이 왔다" "오늘 오전 일정은 OO이다"처럼 사용자가 묻기 전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죠.

한 마디로 내 컴퓨터(로컬 기기)에 상주하면서 일정 보고, 파일 정리, 정보 검색 같은 잡무부터 코딩, 소프트웨어 구축까지 시키는 업무를 능동적으로 처리해주는 AI 비서인 셈입니다. 텔레그램, 왓츠앱, 디스코드, 슬랙 같은 메신저 앱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게 설계된 점도 호평이고요. 로컬 기기에서 구동되다 보니 AI가 사용자와 대화한 모든 내용을 로컬 마크다운 파일로 저장해놓고 수시로 읽으면서 기존 대화와 사용자의 선호도, 이력과 맥락에 맞춰 진짜 비서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또 필요한 기능이 없으면 스스로 API를 조사하고 코드를 짜서 새로운 스킬을 구축하기도 한다는데, 덕분에 24시간 알아서 일하는 AI 직원을 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저전력 맥 미니를 전용 서버로 구매하고 오라마 같은 오픈소스 엔진으로 AI 모델을 로컬 기기와 연결, 몰트봇을 이용해 무제한 가동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몰트봇을 개발한 피터 슈타인버거는 혼자서 한 달 간 6600건의 커밋을 기록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보통 개발팀 수십 명이 할 일을 혼자 해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전통 소프트웨어 매출 성장 모델 붕괴
이런 AI 에이전트의 진화가 가속화할 수록 전통 SaaS 기업들의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합니다.많은 전통 SaaS 기업은 사용자 수(seat) 기반 요금제를 사용합니다. 직원이 1000명인 회사 전원이 소프트웨어를 쓰면 1000개의 구독 또는 라이선스 비용을 주기마다 내는 방식입니다. 이런 사용자 수 기반 매출 성장 모델은 고용 증가를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의 시대, 생산성 혁명의 시기엔 이 논리가 붕괴됩니다. AI 에이전트가 직원 10명이 할 일을 혼자서도 하게 되면 엔지니어의 수요는 줄어듭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를 줄일 수 있어서 좋지만, 소프트웨어 회사 입장에선 돈을 받을 머릿수가 줄어듭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는 이미 "AI가 엔지니어 업무 대부분을 수행하기까지 6~12개월도 안 남았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제까지 좋은 소프트웨어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사용하기 편한 인터페이스와 화면(UI/UX)도 불필요해집니다. 가령 "가장 싼 비행기 표를 예매해줘"라고 말하면 AI가 가격 비교 사이트나 항공사 앱에 접속해 알아서 결제까지 끝냅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쓰기 편한 UI는 의미가 없습니다. 에이전트가 대체할 수 없는 기능이나 독점적인 원본 데이터 없이 UI로 승부하던 수많은 SaaS 기업들의 존재 가치는 증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업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AI 모델을 태워 필요한 기능을 직접 만들어 쓰는 '셀프웨어' 시대의 가능성도 그 자체로 소프트웨어 섹터의 가격을 재평가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셰이 볼루어 퓨처럼그룹 수석 전략가는 "과거엔 소프트웨어를 구현하는 것 자체가 해자(moat)였지만 AI는 이 해자를 압축하고 있다"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시스템 전환이 쉬워질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멀티플을 압축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AI 에이전트 시대, 어떤 소프트웨어가 살아남나
물론 모든 소프트웨어가 끝장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AI 에이전트 시대에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업이 어디일지, 옥석을 가려내고 새로운 밸류에이션 기준을 정립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이런 변화에 가장 취약한 기업은 명확합니다. △사용자 수 과금 체계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거나, 성과·사용량 기반 과금 체계로 전환하기 어려운 기업 △단순 번역, 디자인, 코딩처럼 범용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 △독점적인 원본 데이터 없이 공개된 API를 연결해 편리한 UI를 얹어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SaaS 기업 등입니다.

반대로 에이전트 시대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영역은 무엇일까요? 우선 에이전트가 처리한 업무 건수나 실제로 거둔 성과, API 호출량에 따라 과금하는 모델로 성공적으로 전환하고 '노동력'과의 연결고리를 끊는 기업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무엇보다 에이전트가 우회할 수 없는 '통제 지점(control point)'을 소유한 기업의 중요도가 높아집니다. 사람 대신 AI 에이전트가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보안 관문, 아이덴티티 인증, 네트워킹 같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을 지키는 기업들입니다. 특히 에이전트가 급증하고 해킹을 당할 수 있는 공격 표면이 폭발할 수록 사이버 보안 인프라는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몰트봇의 등장 이후 클라우드플레어의 주가가 오히려 올랐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클라우드플레어는 전 세계에 분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AI와 사용자 사이, 또는 에이전트 간의 통신과 데이터를 보호하는 네트워크 보안 회사입니다. 최근 몰트봇 사용자들이 데이터 보안을 위해 이 회사의 '터널', 즉 내 컴퓨터에 있는 AI를 IP 주소를 공개하지 않은 채 인터넷에 연결해주는 비밀 통로를 많이 이용하면서 몸값이 올랐는데요. 결국 AI 에이전트가 많아지고 그들에게 데이터와 권한을 많이 줄 수록 AI를 세상과 안전하게 연결하는 네트워크 보안 레이어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 내 수백 수천 개의 에이전트가 돌아갈 때 이들의 워크플로우를 조율하고, 에이전트가 호출하는 방대한 API 로그와 시스템 오류를 실시간 추적하며 '관제탑' 역할을 하는 옵저버빌리티 기업의 가치도 높아집니다. 역시 몰트봇 등장 이후 주가가 올랐던 데이터독이 대표적이고요. 팔로알토네트웍스, 크라우드스트라이크 같은 사이버 보안 대장주나 스노우플레이크, 서비스나우까지도 잇달아 큰 돈을 주고 옵저버빌리티 기업을 인수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AI가 사실에 입각한 결정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본 데이터를 보유하거나, 데이터의 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이터 중력' 기업 역시 미래에도 핵심적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점적인 고객 데이터를 보유한 세일즈포스나 SAP 같은 기업들이 오랜 주가 부진을 딛고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합니다.
팔란티어는 데이터 간 관계를 정의하는 독자적인 온톨로지 기법을 보유한데다, 애초에 보안과 권한 제어를 위해 탄생한 플랫폼인 만큼 몰트봇 같은 자율 에이전트가 급증할 수록 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할 운영체제(OS)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부활, 2027년 스토리"
그런데 사실 현재 소프트웨어 재평가 국면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들은 아마 기초 인프라를 보유한 기업들일 겁니다. 에이전트들이 사람을 대신해 업무를 하면서 폭발적으로 API를 호출할 때 그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클라우드, 그리고 제미나이·챗GPT·클로드 같은 AI 모델을 API로 호출하는 양이 늘어날 수록 돈을 버는 모델 보유 기업들입니다. 클라우드와 모델, 칩까지 모두 보유한 알파벳은 여기서도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나아가 몰트봇 같은 에이전트들이 서로 대화하며 더 많은 토큰을 소비하고 더 많은 연산·추론 수요를 발생시키면 반도체·전력에 대한 필요는 또 커질 수 있습니다. 아직도 하드웨어 투자가 부족하다는 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AI가 소프트웨어를 집어 삼키는" 시대에도 소프트웨어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기업들이 생존하고 사라질 지가 명확해지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이영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세일즈포스의 에이전트포스 연 환산 매출은 분기 매출 대비 1.4%에 불과하다"면서 "아직까진 보여준 게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볼루어는 "누가 가격 결정력을 갖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는 밸류에이션이 억눌린 채 소프트웨어는 유배된 섹터처럼 거래될 것"이라며 "여러 분기에 걸쳐 증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로 자금이 돌아오는 시기는 2027년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지형을 구조적으로 재편하고 있는 시기인 만큼, 섣불리 '저가 매수'를 외치기보단 AI 에이전트 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입증하는지 최소 몇 분기 이상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