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화가 덧칠하며 완성된다면 조각은 정반대다. 미켈란젤로는 이를 ‘대리석 속 형상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했고, 그 끝에 남은 본질만이 비로소 빛을 얻는다. 자연에도 닮은 찰나가 있다. 달이 광휘를 가릴 때 비로소 태양을 둘러싼 진줏빛 물결(코로나)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연주는 덧셈의 회화일까, 뺄셈의 조각일까. 혹은 스스로의 빛을 가려야만 본질이 드러나는 코로나의 역설일까. 지난 21일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첼리스트 한재민을 보며 이 질문이 떠올랐다.
260석 규모 와일 리사이틀 홀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객석에 전달되는 투명한 공간이다. 무대에 들어선 한재민은 환한 미소로 인사했다. 그 순간 거침없는 에너지로 무대를 사로잡던 젊은 시절 조영창의 실루엣이 겹쳐 보였다. 2006년생, 에네스쿠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거둔 한재민은 신동의 시기를 지나 차세대 거장의 정체성을 다지는 중이다.
이날 공연을 관통한 단어는 ‘긴장감’이었다. 그는 연주 내내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력을 유지했고, 날 선 감각을 곡 전체에 불어넣었다. 첫 곡 드뷔시 첼로 소나타에서 그는 곡의 급변하는 표정과 음의 도약을 단단한 테크닉으로 설득력 있게 구축했다. 작품 속 ‘불안의 미학’은 마치 그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이어진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첼로 편곡 버전)는 호불호가 갈릴 법했다. 한재민은 에너지를 밀도 있게 채우며 타협 없이 밀어붙였고, 견고한 음향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다만 치열함이 임계치를 넘어선 듯했다. 따스하게 스며들어야 할 주제 선율에서도 강렬한 빛이 사물의 그윽한 음영을 지워내는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
피아니스트 자니스 카리사는 한재민의 뜨거운 질주에 균형추가 됐다. 그는 첼로와 함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때로는 영롱한 톤으로, 때로는 감싸 안는 목소리로 음향의 이면을 면밀히 조명했다. 첼로가 극단적으로 여린 소리로 내려앉는 순간까지 넉넉하게 받아낸 그의 존재는 리사이틀의 완성도를 높였다.
마지막 작품인 프로코피예프 소나타는 드라마틱한 음향 대비와 기교를 요한다는 점에서 한재민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었다. 기교는 정교했고 음향의 대비는 극적이었다.
프랑크에서도, 프로코피예프에서도 밀도가 여백을 압도하는 순간이 있었다. 이런 에너지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무대에서 그의 강점으로 더 빛날 성질의 것이었다. 대편성 음향 속에서도 소리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앙코르로 연주된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앞선 작품들과는 결이 달랐다. 섬세한 첼로 선율을 타고 그동안 가려져 있던 진줏빛 코로나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하게 내려앉는 공기처럼 리사이틀은 고요하게 끝을 맺었다.
뉴욕=김동민 뉴욕 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