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방컴퍼니가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지만, 투자자 반응은 시큰둥하다. 과거 자사주를 매입한 후 한 번도 소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아가방컴퍼니의 자사주 비율은 15.75% 수준이다. 회사 측은 자사주 소각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자사주 소각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가방컴퍼니, 100억 규모 자사주 취득 신탁 계약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가방컴퍼니는 지난 27일 1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오는 7월 27일까지다. 회사는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밝혔다.자사주 매입은 통상 호재로 꼽힌다. 회사가 주주환원 여력을 갖췄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유통주식 수가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일부 기업이 자사주를 최대주주의 우호 세력에 넘겨 지배력을 강화하는 등 자사주를 사실상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다.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소유주가 바뀌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이 때문에 자사주를 단순 보유하는 게 아니라 '소각'을 병행해야 주주환원이 완성된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소액주주가 보유한 주당 가치가 상승하고, 주당순이익(EPS)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수익성 지표도 개선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자사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자사주 소각 규모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증시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금액은 21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4년(13조9000억원) 대비 53.96% 급증했다. 2023년(4조8000억원)에 비하면 네 배 이상 늘었다.
아가방컴퍼니, 꾸준히 자사주 매입했지만 소각은 안 해
시장 흐름과 달리 아가방컴퍼니는 자사주 소각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아가방컴퍼니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자사주 518만842주를 매입했다. 발행 주식 수의 15.75%에 달한다. 계획에 따라 7월까지 227만147주를 추가 매입하면 자사주 비율은 20%를 웃돌 전망이다.자사주를 취득할 때마다 회사는 주가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를 취득목적으로 밝혔지만, 한 번도 소각하지 않았다. 지난 3분기 분기보고서에서도 아가방컴퍼니는 "자사주 소각 관련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도 소각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바라보는 개인투자자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투자자는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 "자사주를 없애라는데 왜 사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적었다. 이 투자자의 글에 한 네티즌은 "소각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상법 개정 전에 자사주를 팔아 엉뚱한 짓을 할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대주주의 낮은 지분율을 지적하며 자사주가 경영권 강화에 쓰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아가방컴퍼니의 최대주주 랑시코리아의 지분율은 26.5%에 불과하다. 랑시코리아는 중국 패션기업 랑시그룹의 자회사다. 자사주를 매입해 유통 물량이 줄어들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원하는 투자자가 주식을 취득하기 어려워진다.
최대주주 변경 후 무배당…손실 투자자 비율 93% 달해
무배당 기조가 10년 이상 이어진 점도 주주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2002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아가방컴퍼니는 2013년까지 매년 배당금을 지급했다. 2014년 랑시코리아가 아가방컴퍼니를 인수한 후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2020년 흑자 전환한 후 연간 100억원대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자사주 처리 방법을 고민하는 사이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4월 22일 장중 기록한 52주 최고가(9300원) 대비 현재 주가(4720원)는 절반 수준에 그친다. NH투자증권을 통해 아가방컴퍼니에 투자한 2856명(26일 기준)의 평균 손실률은 27.26%에 달한다. 손실 투자자 비율도 93.35%로 높다.
아가방컴퍼니는 자사주 소각에 대한 목소리를 인지하고 있으며 소각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구체적인 자사주 소각 계획은 없다"면서도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경영진이 알고 있다. 상법이 개정되면 (자사주를 소각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는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 등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회사는 검토한 바 없다"며 "배당은 지급할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