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 전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 이란에 군사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란 시위가 진정된 뒤 군사 개입에서 한발 물러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군사력 카드를 꺼내 들자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국제 유가도 급등했다.
◇중동에 집결하는 美 함대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연설에서 “또 다른 아름다운 함대가 지금 이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그들이 협상을 타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전날 미국 중부사령부는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을 중동에 배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함대가 링컨함 외 추가 해군 전력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외신은 이란 일대에서 미국의 군사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이날 미국은 공군 훈련에 나서며 이란에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중부사령부 산하 공군전투사령부는 “중부사령부 책임 구역에서 공군력 배치, 분산, 유지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대비 태세 훈련을 며칠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란을 비롯해 이집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21개국을 관할한다. 가디언은 “이란과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해당 지역에 무력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훈련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동안 백악관은 이란 정부의 시위대 유혈 진압을 문제 삼으며 군사 개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압박해왔다. 이후 이란 정부가 시위대 처형을 연기해 군사 행동을 보류했지만, 일대 전력을 강화하며 군사적 옵션을 완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군사력 증강에 즉각 반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웃 국가 영토를 이용해 공격을 감행하면 해당 국가를 적대국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 당국은 이날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비해 비상 조치에 착수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주지사들에게 “권한을 각 주에 이양해 주지사가 사법부 및 다른 기관 관계자와 접촉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공격으로 고위 지도부가 암살당하면 지방정부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권한을 분산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중동의 미국 우방국도 우려를 나타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페제시키안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역내 평화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아랍에미리트(UAE)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자국 영공, 영토, 영해를 이란 공격에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겠다”며 “지역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WTI 62달러 돌파
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목표가로 제시한 배럴당 50달러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이날 유가는 미국 한파와 폭설로 공급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동 지역 긴장까지 더해지며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서브텍스원유(WTI)는 전장 대비 1.76달러(2.90%) 오른 배럴당 62.39달러에 마감했다. 브렌트유 선물도 3% 급등하며 배럴당 68달러 선을 돌파했다.미국 원유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석유 생산 업체는 전국 하루 생산량의 약 15%인 최대 200만 배럴의 생산 손실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겨울 폭풍으로 에너지 시설과 전력망 부담이 커진 탓이다. 정전으로 멈춘 카자흐스탄 최대 유전인 텡기즈 유전의 생산량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점도 유가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카자흐스탄의 생산력이 복구되더라도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이어지며 WTI는 당분간 배럴당 60달러 선에 거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초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이 공급 과잉을 이유로 WTI 전망치를 52달러대로 제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달러 약세도 유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달러로 책정된 상품의 매력이 높아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함대 발언은 유가에 위험 프리미엄을 더했다”고 분석했다. 이날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란이 공격받을 경우 핵심 해상 운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