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중학교 교사로 발령받은 지 두 달 만이었다. 방과 후 학생들에게 기계체조 시범을 보이다 그만 사고를 당했다. 경추 손상으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일상이 한꺼번에 멈췄다. 이대로 끝인가. 스물넷, 삶을 내려놓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지내던 어느 날 한 줄기 생각이 스쳤다. “그래, 몸은 말을 안 들어도 입은 움직이잖아!”
그는 입에 붓을 물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렸다. 그 곁에 짧은 문장을 덧붙였다. 그림과 글이 서로를 끌어안는 시화(詩畵)의 세계가 그렇게 열렸다.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 ‘꽃의 시화전’은 200차례 이상 이어졌고, 그가 펴낸 책도 200만 부 넘게 팔렸다. 그의 이름으로 고향에 세워진 미술관에는 매년 10만여 명의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
그의 이름은 호시노 도미히로(星野富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이자 시인. 그의 그림은 밝고 부드럽다. 응달에서 피워 올린 빛의 꽃망울 같다. 시도 그렇다. 어휘는 평범한데 행간마다 비범한 의미가 반짝인다. 병실 창밖에서 냉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본 그는 어머니의 고단한 어깨를 떠올린다. ‘하나님이 단 한 번만이라도/ 나의 팔을 움직이게 해 주신다면//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냉이풀의/ 꽃 열매를 보고 있으면/ 그런 날이 정말로 올 것 같다.’(‘냉이풀’ 전문)한쪽 팔만 움직일 수 있어도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싶다는 소망은 ‘그런 날이 정말로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에게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감사의 대상이다. 그는 ‘매일초’라는 시에 이렇게 썼다.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우리도 ‘슬픈 일’과 ‘기쁜 일’을 매일 겪는다. 그때마다 울고 웃으며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희로애락의 물굽이를 오르내린다. 갖가지 핑계를 대고 남 탓을 하며 일희일비한다. 그 속에 어떤 삶의 섭리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 채….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는 구절은 그래서 더욱 빛나는 삶의 경구다.
위대한 것은 이렇게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남프랑스 피레네 산자락에서 평생을 보낸 시인 프랑시스 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을 일상 속 장면으로 구체화했다. 그는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라는 시에서 ‘나무 병에 우유를 담는 일’과 ‘밀 이삭들을 따는 일’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따뜻한 계란을 거두어들이는 일’ 같은 농가의 소소한 일을 하나씩 펼쳐 보이며 그 속에 위대함의 가치가 들어 있다고 노래했다. 이런 일상의 검박한 행복이 무슨 이념이나 철학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이 떠오른다. 이 그림은 하녀가 테이블 위 토기에 우유를 조심스럽게 따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고요한 방에서 천천히 우유를 따르는 순간, 흰 우유의 가느다란 줄기가 방안 공기를 바꾼다. 페르메이르는 이처럼 단순한 일상 활동을 놀라운 집중의 순간으로 포착함으로써 평범한 여성을 위대한 예술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했다.
같은 시기 프랑스 수도사 니콜라 에르망(영어식 수도명: 로렌스 형제)은 수도원 부엌을 영성의 통로로 바꿨다. 허름한 부엌에서 약 40년을 보낸 그는 “오믈렛을 뒤집는 작은 일도 주를 위해 사랑으로 한다”며 일상의 노동을 신성한 기도로 승화시켰다. 그는 특별한 수도자만이 영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평범한 일터가 곧 수도원이며, 일상이 곧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덕분에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명저가 탄생했다.
문명도 역사도 '사소함의 축적'
과학과 기술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레고어 멘델은 남들이 하찮게 보던 완두콩을 8년 동안 기르며 매일 관찰하고 기록한 끝에 ‘멘델의 법칙’을 정립했다. 목수 출신 시계수리공 존 해리슨은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연습을 날마다 반복하며 항해용 정밀시계 크로노미터를 발명했다. 이들은 ‘가장 위대한 발견은 매일 같은 관찰에서 나온다’는 것을 온몸으로 입증했다.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할 수 없는 것’이 절대다수인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 삶은 달라진다. 호시노 도미히로는 병상에서 그 하나를 붙들어 ‘생존의 언어’로 키웠고, 프랑시스 잠은 들판에서 ‘시의 언어’로, 니콜라 에르망은 부엌에서 ‘신앙의 언어’로 꽃피웠다.
이런 원리를 발견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들이 평범 속에서 찾은 위대함의 열쇠는 일상 속의 ‘감사회로’였다. 감사는 도덕적 미덕뿐만 아니라 긍정과 행복 에너지를 증폭하는 동력이다. 뇌과학자들도 “감사는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뇌의 성장 엔진”이라고 말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감사할 때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하고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과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나며 더 많은 감사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날마다 ‘감사 목록’을 작성하면 뇌가 긍정 요소를 자동으로 찾도록 신경 회로가 바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일상을 통째로 받쳐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이야말로 슬픔과 기쁨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감사의 보상 회로다. 인생은 매일의 총합이고, 문명과 역사도 사소함의 축적이다. 해마다 연초에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려고 덤비지만, 오늘부터는 거창한 결심보다 평범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하루 한 줄 감사 목록부터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