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를 앞두고 K배터리가 로봇의 '심장'인 배터리 벨류체인을 초기에 장악하고 있다. 고에너지밀도의 삼원계 배터리와 폼팩터에 강한 한국 배터리에 글로벌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게 기술혁신이 이뤄나고 있는 휴머노이드 분야가 중국의 '가성비' 배터리를 압도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 테슬라 및 중국 내 다수 휴머노이드 업체와 배터리 납품 및 공동 개발을 논의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모델 옵티머스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다. 시장에서 특별하게 보는건 중국 휴머노이드 회사조차 LG에너지솔루션의 제품을 사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휴머노이드 배터리 영역에서만큼은 한국이 양국 벨류체인 모두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미국과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기업이 한국 배터리를 찾는 결정적인 이유는 '공간의 한계'에 있다. 전기차와 달리 휴머노이드는 배터리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가슴 부위 등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반면 수십 개의 관절 모터와 인공지능(AI) 연산 장치를 동시에 돌려야 해 에너지 소모는 막대하다. 중국의 주력인 에너지밀도가 낮은대신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는 제대로된 가동이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2170 및 46원통형 시리즈(지름 46mm, 높이 80mm의 차세대 배터리) 폼팩터, 울트라 하이니켈(니켈 비중 95% 이상) 삼원계 기술 등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양산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론 머스크는 내년도 말부터 수천대의 산업용 휴머노이드 양산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관련 K배터리 벨류체인도 이 스케줄에 맞춰서 가동될 수 있다. CES에서 기술력을 선보인 현대차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삼성SDI와 연합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SDI는 이미 현대차의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를 통해 기술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보스톤 다이내믹스는 2028년 삼성SDI의 배터리를 납품받아 양산을 시작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SK온 역시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개발에 나선것으로 알려졌다.
휴머노이드 필수인 '46시리즈+울트라 하이니켈'
기술력 갖춘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뿐
기술력 갖춘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뿐

이미 유튜브 등에선 글로벌 휴머노이드 기업이 제조한 휴머노이드가 공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세계 어떤 공장에서도 ‘일하는 휴머노이드’가 실제 상용화되지는 않고 있다.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에너지 문제다. 공장 등에서 고강도 노동을 한다면 현재의 배터리 기술력으로는 휴머노이드가 1시간도 가동하지 못한다. 배터리사들이 개화되고 있는 휴머노이드 시장을 위해 고에너지밀도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는 이유다.
이 경쟁에서 한국이 앞서나가고 있다. 고에너지 밀도와 출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휴머노이드 영역에서는 한국이 주력해온 삼원계 배터리 기술력을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성비’의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밀리고 있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예상보다 빠른 휴머노이드 기술혁신이 뜻밖의 기회가 되고있다는 분석이다.
○ '가슴 속 한 뼘' 전쟁…"LFP는 무리"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니켈비중을 최대한 끌어올린 울트라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 기술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용 배터리 개발을 하고 있다. 니켈은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결정한다. 다만 니켈비중을 높이면 안정성이 떨어져 기술장벽이 높다. 중국의 CATL과 BYD 등도 휴머노이드 시장을 염두에 두고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 기술을 개발중이지만 삼원계 배터리 기술 업력이 짧은 탓에 아직 미드니켈 기술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중국기업들은 울트라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의 연구개발 기술은 있지만 양산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미국,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과 개발 및 납품 논의를 하고 있는 이유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은 대량 양산이 이뤄지는 올해말, 내년을 시작으로 2030년께 완전 상용화가 이뤄지고 2040년에는 수억대가 보급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40년 이후에는 전세계 최대 산업이 될 것이란 게 주요 증권사들의 전망이다. 이 시장을 만들고자 하는 휴머노이드 회사들에게는 에너지 문제에서만큼은 선택권이 없다.
휴머노이드는 마른몸의 인간 체형이라 배터리 팩을 넣을 공간자체가 제한적이다. 가슴속 한 뼘 남짓한 공간에 최고 효율의 배터리를 채워야한다. 최근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교체하는 기술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 기술도 한계가 명확하다. 휴머노이드 1대를 가동하기 위한 비축 배터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로봇 작업 동선을 낭비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휴머노이드 기업들은 휴머노이드로 불꺼진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는 ‘다크팩토리’ 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배터리 용량 증대가 필수적이다.
단위면적당 효율을 극대화하는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와 46원통형시리즈(지름 46mm, 높이 80mm의 차세대 배터리)의 조합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하이니켈 배터리 보다 에너지 밀도가 30% 이상 높고, 46시리즈도 기존 각형·원통형·파우치형 등의 폼팩터보다 20~30% 밀도가 높다.
이 기술을 기본 토대로 에너지밀도를 더 높이는 방식이 앞으로 휴머노이드 관련 기술 경쟁이 될 것이란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한 배터리 업체 연구원은 “삼원계 배터리 기술을 기반으로 향후 전고체 기술 등을 더해 에너지 밀도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휴머노이드 배터리 기술 경쟁이 될 것”이라며 “중국이 우리를 압도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애초에 휴머노이드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 ‘LG엔솔’ ‘삼성SDI’ 양대 연합군 출격 예정
이르면 내년부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를 필두로 한 휴머노이드 배터리 벨류체인이 가동될 것이란 관측이다. 전세계에서 울트라 하이니켈 배터리와 46시리즈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건 두 기업뿐이어서, 양대 기업을 중심으로 연합군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두 기술을 토대로한 양산기술을 확보했고, 삼성SDI는 올해내 관련 준비를 끝낼 예정이다.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을 핵심 파트너로 삼고 엘앤에프(양극재), 엔켐(전해액), 도레이첨단소재(분리막) 등과 견고한 소재 동맹을 구축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SDI는 보스톤다이내믹스 등을 위한 휴머노이드 배터리를 에코프로비엠(양극재), 더블유씨피(분리막), 솔브레인(전해액) 등과 함께 개발할 것이란 관측이다.
아직 양산계획을 밝히지 않은 피규어AI, 애질리티 로비틱스, 1X테크놀로지스 주요 글로벌 휴머노이드 회사들 역시 선택권이 없는 만큼 두 회사중 한 곳과 납품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초기 시장은 한국 배터리사들이 장악할 것이 분명하다”며 “향후에도 중국과 삼원계 배터리 관련 기술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