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돌아온 <흑백요리사> 열풍 속에서 안성재 셰프의 존재감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요리를 입에 넣고 한참 동안 이어지는 그의 침묵은 보는 이들을 숨 죽이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그가 내뱉는 정제된 평가에 환호하면서도,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서늘한 단호함에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서늘한 긴장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심사 과정은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의 결과물을 마주하고, 이를 판단해 피드백을 건네는 매일의 익숙한 풍경과 닮아 있다.
누군가 밤잠을 설쳐가며 만든 결과물을 평가하고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리더의 숙명. 안성재 셰프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심사 기준은 조직의 리더들이 구성원의 업무 성과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메시지를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의 말과 태도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일터에서 자주 놓치고 있던 리더십의 결정적인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i>#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의도를 묻는다</i>
안성재 셰프는 심사 과정에서 참가자의 ‘의도’를 집요하게 묻는다. 그는 미슐랭 3스타라는 자신의 권위를 절대적 정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참가자가 이 요리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먼저 확인하고, 그 의도가 접시 위에 온전히 구현되었는지를 살핀다.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 상대의 논리를 존중하며 실행의 완성도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많은 리더가 완성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실무에 개입하지만, 대개는 ‘어떻게(How)’라는 방법론에 매몰되곤 한다. 폰트 크기나 단어 선택 같은 지엽적인 디테일에 매달리다 보면, 구성원의 자율성은 쉽게 훼손되고 리더 스스로도 마이크로 매니징에 갇히기 쉽다.
반면 ‘왜(Why)’를 묻는 행위는 구성원의 몰입을 자극한다. 리더가 의도를 묻는 것은 구성원의 주체적 사고를 신뢰하고, 목표했던 바를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에 집중하겠다는 존중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업무 설계에 자신의 의도를 반영하고 통제권을 가질 때 ‘심리적 주인의식(Psychological Ownership)’이 형성된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의도를 묻는 행위는 업무의 주체성을 구성원에게 넘겨주는 임파워먼트의 과정인 셈이다.
정답이 정해져 있거나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의도를 증명하는 일이 되면 업무의 밀도는 달라진다. 리더는 구성원의 의도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이 현실의 성과로 정렬되도록 돕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i># 타협하지 않는 기준으로 탁월함에 다가선다</i>
안성재 셰프하면 지난 시즌에서의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라는 심사평을 빼놓을 수 없다. 고기 뿐만 아니라 채소의 익힘 정도나 미세한 간의 차이에도 고개를 젓던 그의 모습은 모두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가 추구하는 완결성에 대한 집요함은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 중 ‘최고 수준 추구(Insist on the Highest Standards)’를 떠올리게 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높은 기준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리더에 의해 조직에 전염되는 문화라고 강조해왔다. 안성재 셰프가 반복적으로 높은 기준을 제시하자, 참가자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자신의 기준을 재설정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유사하다. 이처럼 리더의 타협하지 않는 기준은 조직 전체의 품질 기준을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이러한 단호함은 때로는 냉정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기준을 넘지 못한 결과물에 리더가 눈을 감아주는 순간, 조직에는 ‘적당함’이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탁월함은 리더의 관용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일의 본질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태도로부터 만들어진다. 안성재 셰프가 미세한 맛의 차이를 끝까지 짚어내듯, 리더가 최종 수문장으로서 높은 기준을 사수할 때 조직은 비로소 한단계 성장한다. 구성원 역시 자신을 적당히 봐주는 리더보다, 잠재력을 끝까지 끌어올려 주는 높은 기준의 리더를 통해 진정한 성장을 경험한다.
<i># 감정을 걷어낸 정제된 언어의 힘</i>
많은 리더가 피드백 과정에서 관계를 망치곤 한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실망감이나 짜증이 섞인 표현을 무심코 꺼내게 되기 때문이다. 안성재 셰프의 심사평이 인상적인 이유는 절제된 태도에 있다. 그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철저히 현상과 근거에 집중한다. “아직 제 입맛에 텁텁함이 남아 있습니다. 저에겐 맛있지 않았습니다”와 같은 피드백은 상대를 부정하는 비난이 아니라, 결과물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정밀한 진단에 가깝다. 이러한 정제된 언어는 상대의 방어 기제를 낮추고 메시지만을 정확히 전달한다.
하버드대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는 저서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에서 피드백의 화살은 ‘개인(Person)’이 아닌 ‘문제(Project)’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에 대한 비난이라는 두려움이 사라질 때, 피드백은 방어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과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안성재 셰프가 탈락자들에게도 존중받는 이유 역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요리라는 결과물 자체를 논리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서가 성의 없다”라는 감정적 평가는 구성원에게 좌절감을 남기지만, “데이터 분석이 다양하지 못해 결론의 신뢰도가 낮아 보인다”와 같은 논리적 지적은 행동 변화를 이끈다. 리더가 감정을 걷어내고 현상에 집중할 때, 피드백은 비로소 비난이 아닌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여 진다.
<i># 예우를 다하는 리더의 품격</i>
안성재 셰프가 보여준 태도의 핵심은 결과물에 대한 예우에 있다. 그는 요리사의 의도를 경청한 뒤, 음식을 맛보는 동안 오직 그 본질을 파악하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이는 상대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가장 정확한 진단을 내놓기 위한 전문가다운 태도다.
조직의 리더 역시 구성원의 결과물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한 줄의 문장과 수치에 담긴 치열한 고민을 읽어내고, 그 위에 리더의 통찰을 더해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요리를 정성껏 음미하듯 동료의 결과물을 정중히 대하는 몰입의 깊이가 곧 조직의 실력이 된다.
이제 눈앞의 결과물을 안성재 셰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리더의 시선에 예우가 담길 때, 구성원이 담아내는 진심의 깊이도 달라진다. 리더의 품격은 눈에 보이는 성과 너머의 과정까지 귀하게 여기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손송민 휴넷리더십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