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순하면서도 폭력적인 서사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나비부인>이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비극적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1904년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122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가운데 하나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 이유는 서사의 비극성 자체보다, 그 비극을 감싸 안는 푸치니 음악의 힘에 있다.
푸치니는 자신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비운의 여주인공들에게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허락한 작곡가다. <토스카>의 토스카에게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를, <라 보엠>의 미미에게는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와 ‘안녕, 그대여(Donde lieta usci)’를 선사하는 식이다. <나비부인>에서도 그는 초초상에게 ‘어느 맑게 갠 날(Un bel di, vedremo)’이라는 결정적인 독백 장면을 내어준다. 이 음악을 통해 초초상은 철저한 희생자이면서도, 동시에 당당하고 고귀한 존재로 관객 앞에 선다.

지난 23일,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는 지휘자 정민이 이끄는 강릉시립교향악단이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렸다. 타이틀 롤인 나비부인 역에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과 호주 시드니 등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해 온 소프라노 여지원이 출연했고, 핑커톤 역은 런던 로열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슈타츠오퍼 등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활동해 온 테너 김재형이 맡았다.

<나비부인> 전막에 걸쳐 푸치니의 음악적 다이내믹 못지않게 작품의 무게 중심이 되는 요소는 관객의 시각을 사로잡아야 하는 동양의 이미지다. 일본 항구 도시에 자리한 전통 가옥 풍경은 영상 디자이너 장수호의 영상 속에서 과장 없이 제시됐고, 관객이 작품 정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돕는 핵심 요소로 기능했다.


지난해 부산콘서트홀에서 정명훈이 지휘한 두 편의 콘서트 오페라, 피델리오와 카르멘을 연출한 엄숙정이 연출을 맡았다. 오페라와 달리, 오케스트라가 피트를 벗어나, 무대 위에서 성악가들과 함께 관객과 마주하는 콘서트 오페라에서 그는 단차가 있는 런웨이형 무대를 이용해 오케스트라를 사면으로 둘러싸는 방식을 택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무대였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오페라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같이 있음에도 시공간 구분이 확실히 느껴지는 기법이었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핑커톤에게 흰색 해군 정복을 입히지 않은 것이다.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마치 관행처럼 여겨져 온 의상적 관행을 깨고 김재형이 검은 정장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이는 나비부인(초초상)의 삶을 파괴할 '핑커톤'이라는 인물의 도덕적 어두움을 시각적으로 암시하는 선택처럼 보였다.
1막에서 테너 김재형은 가창력만으로 현장을 압도했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성량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터미션 동안 객석에서는 그의 노래에 대한 감탄이 이어졌다. 한 관객은 “마이크 없이 오로지 뱃심만으로 객석을 가득 채우는 성량이야말로 오페라의 진짜 매력 아니겠느냐”고 감탄했다.


2막과 3막에서는 초초상 역의 소프라노 여지원이 무대를 장악했다. 만일 핑커톤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를 계속 기다리겠다며, 스스로 '망부석'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아리아 '어느 맑게 갠 날'의 독창 장면과, 자신의 아이에 대한 애정 어린 연기를 선보인 장면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소녀에서 성장한 어머니로서의 초초상을 그려낸 그의 연기는 관객에게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여지원은 인물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자신이 입은 의상을 연기에 이용하는데도 뛰어났다. 2m가 넘어 보이는 긴 의상을 입고도, 무대 위를 오가며 치마를 여미었다 풀어내는 동작을 반복했다.

훌륭한 기획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 세계적 성악가들이 함께한 콘서트 오페라지만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무대 위에 화려한 의상을 입고 연극적 역할에 참여한 강릉시립합창단 단원들이 악보를 손에 들고 노래하는 모습이 옥에 티로 남았다. 장면마다 암보와 시창을 오가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연기를 수행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처럼 올블랙 의상을 입고 무대에 앉아 노래했다면 더 설득력 있었을 것이다.
1막에서 여성 합창이 초초상을 부르는 장면에서, 악보를 본 합창단원 사이의 타이밍이 완전히 맞지 않았다. 미국인에게 ‘팔려가는’ 초초상을 비난하듯 “오~ 초초상”이라 노래하는 이 장면은, 이후 초초상이 정서적으로 고립되는 서사의 출발점으로서 보다 날카롭게 표현돼야 할 대목이었다.

강릉시향과 지휘자 정민은 작년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 이어, 올해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연이어 무대에 올렸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도전하는 것이다. 작품마다 4시간이 넘는 오페라가 4부작으로 구성된 '링 시리즈'는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아니다. 합창과 오케스트라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남다른 책임감으로 준비해야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많은 국내 오페라 팬들은 올겨울, 강릉이 바그너의 대작을 품는 ‘한국의 바이로이트’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강릉=조동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