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를 제출했으면서 "해고당했다"며 실업급여를 수령한 근로자가 고용보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회사의 압박으로 형식상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라면 실질적으로 ‘해고’라는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회사와 짜고 실업급여 수급을 공모하는 일이 잦은데 엄연히 법적으로 범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최근 고용보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이같이 판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2024년 7월 배송회사 직원 A씨는 회사 대표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배송 후 늦장 귀사'를 이유로 해고 예고기간을 거쳐 9월 27일 자로 해고하겠다는 통보였다. 회사는 동시에 연차 휴가 소진을 명령했고, A씨는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못했다.
이후 회사의 '회유'가 시작됐다. 부장이 A씨에게 연락해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한다는 사직서를 쓰고 마무리해달라"고 요구한 것. A씨가 망설이자 E 부장은 "사직서를 써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여러 차례 사직서 작성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9월까지 기다리기보다 하루라도 빨리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A씨는 22일 회사에 방문해 '일신상의 이유로 31일 사직한다'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A씨는 '경영상 권고사직'을 이유로 실업급여를 신청해 52만 8000원을 수령했다. 하지만 이는 고용보험 부정수급 사례로 적발됐고, 결국 검찰은 '자진 퇴사임에도 허위로 사유를 기재해 부정 수급했다'며 A씨와 부장을 고용보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실질적으로 해고당한 것이므로 부정수급이 아니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는 형식을 취해도, 근로자가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해고"라고 지적했다.
이어 "A씨의 근로계약 종료 여부는 사용자 측의 일방적 의사로 결정됐다"며 "다만 종료일을 당초 예고된 9월보다 이른 7월 31일로 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측의 권유에 따라 사직서가 작성·제출된 것"이라며 "A씨는 실질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많은 중소기업 현장에서 해고 대신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서를 쓰면 실업급여를 받게 해주겠다는 식의 합의가 이뤄지곤 한다.
법무법인 대환 조철현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회사가 사직서 제출을 제안했고, 실질적으로는 해고에 해당해서 근로자에게 무죄가 나온 사례"라며 "역으로 근로자가 실업급여를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엔 퇴사자와 회사 관리자가 함께 '부정수급자'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회사가 해고하는 경우도 실업급여 수급 사유가 되니 해고 통보 문자나 녹취록 등 '해고의 실질'을 증명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