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종종 풍요가 아니라 결핍에서 나온다. 1970년 세 번째 유인 달 착륙이 목표이던 아폴로 13호. 갑자기 사령선 산소 탱크가 폭발하자 우주인들은 비좁은 달 착륙선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세 명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로 질식할 위기에 처했다. 여분의 정화 필터는 착륙선의 공기 정화 장치에 제대로 끼울 수 없었다. 우주인들은 주변 골판지, 비닐봉지 등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 필터를 만들어냈다. 이 투박한 장치가 그들을 살렸다. 결핍이 인간의 뇌를 극한까지 쥐어짜낸 성과였다.지난해 주목받은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도 딱 그렇다. 미국의 대중 제재에 갇혀 엔비디아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수급이 막혔다. 딥시크는 질문을 바꿨다. “어떻게 하면 GPU를 더 확보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있는 칩을 더 쥐어짤까?”로. 지난해 1월 등장한 AI 모델 ‘R1’의 충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기업이 이달 들어 쏟아낸 혁신도 절박함의 결과다. 우선 ‘조건부 메모리’ 기술. 기존 대규모언어모델(LLM)은 ‘이순신은 누구인가?’ 같은 단순한 질문에도 파라미터(매개변수) 수천억 개를 전부 가동하는 낭비를 저지른다. 딥시크는 자주 쓰는 지식을 값비싼 GPU가 아니라 흔한 일반 시스템 메모리(D램)에 저장해 활용하는 법을 찾았다.
‘매니폴드 제한 하이퍼커넥션(mHC)’도 고민의 산물이다. AI 모델은 연산 블록을 높이 쌓으면 똑똑해진다. 하지만 정보 처리량이 급증해 전체 구조가 무너지기 쉽다. 남들은 이 문제를 더 많은 하드웨어 투입으로 해결했다. 반면 딥시크는 행렬과 기하학을 활용한 수학적 접근으로 개선했다.
이제 중국 AI를 ‘짝퉁’이라고 비웃기 어려워졌다. 미국의 대표 연구기관 에포크AI는 AI 최고 모델에서 미국과 중국 간 기술 격차가 고작 ‘3개월’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딥시크뿐만이 아니다. 문샷AI, 지푸AI 등 다른 중국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첨단 기술도 전 세계 AI 기업이 따라 한다.
더 무서운 건 중국 정부다. 최근 미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를 일부 완화했다. 하지만 중국은 오히려 자국 기업에 “미국 칩을 쓰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뒷문으로는 다를 수 있다. 겉으로는 결핍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모자라고 부족한 환경이 혁신을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화웨이 어센드 같은 열악한 자국산 칩으로 미국산 최신 칩 성능을 내도록 밀어붙이고 있다. 동시에 중국 반도체 성능도 향상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최근 한국 AI업계도 딥시크와 같은 방향으로 키를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크기 경쟁’에서 벗어나 ‘똑똑한 설계’로 경쟁하려고 한다. LG AI연구원은 독자적 AI 기술로 메모리 사용량을 70% 절감했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개발한 ‘솔라 오픈 100B’ 모델은 수백억원어치의 GPU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최근 한국 AI업계에서 GPU 수급에 숨통이 트이기도 했다. 정부가 엔비디아 고성능 GPU 26만 장을 확보한 것. 메마른 논바닥 같던 국내 AI 생태계에 내린 단비와 같다. 물론 인프라 확충은 시급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하드웨어 숫자가 늘어났다고 해서 기술 자립이 저절로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 풍요가 독이 될 수도 있다. 넉넉해지면 쉬운 길을 택하기 쉽다. ‘풍요의 함정’이다. 자원이 부족할 때 나오던 치열한 고민과 효율을 향한 집착이 느슨해질 수 있다.
딥시크가 무서운 건 기술이 아니다. 결핍에서 증명한 생존 본능이다. 미국의 제재가 없었다면 딥시크 역시 방만한 파라미터 확장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등 따뜻하고 배부른 환경에서는 기존 공식을 뒤엎는 파괴적 혁신이 싹트기 어렵다. 딥시크가 우리에게 던진 진짜 메시지는 ‘결핍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니어급 AI 인재가 부족한 건 딥시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딥시크는 인력 공백을 한계에 도전하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채웠다.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대담함. 그것은 한국 AI가 생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정부가 확보한 GPU 26만 장은 안락의자가 아니라 도약대여야 한다. 자원이 늘었을 때 오히려 혁신의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것이다. 자원 빈국인 한국이 언제 넉넉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혁신을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