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2001)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다. 하지만 해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가장 많이 변화했다고 느껴지는 것이 인간 관계고 그중에서도 가족 관계다. 개인이 먼저고, 가장 원초적인 가족이라는 관계조차 순서가 밀려나게 됐다.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짐 자무시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황금사자상으로 선택했다. 작금의 현실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서일까.
자무시 감독은 미국 인디영화의 핵심 작가로, 미니멀한 플롯과 침묵 및 반복을 통해 전형적이지 않은 가족 관계를 탐구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유의미한 장면을 깊고 오래 보여주는 롱테이크를 통해 스토리보다 시간과 태도에 집중해 온 감독이다. 열린 결말로 관객이 판단하며 생각할 거리를 주는 감독의 세련된 스타일이 냉소적인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가족 간 피로감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가슴 깊이 공감하게 한다.
영화는 ‘아버지’, ‘어머니’, ‘남매’라는 세 편의 옴니버스로 전개된다.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연기 하모니가 울림을 남긴다. 아버지 역의 톰 웨이츠는 내면의 쓸쓸함과 무력감을 표정의 미묘한 떨림으로 구현한다. 말보다 침묵으로 관계를 드러내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 침묵은 ‘아버지로서는 실패했다’는 점을 조용히 전달한다. 하지만 ‘아버지 개인의 인생을 산다’는 의지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들 제프 역의 아담 드라이버는 딱 잘라 말하지 않으면서도 책임감과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드러낸다. 가족에 대한 부담과 개인적 삶의 긴장감을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표현한다. 어머니 역의 샬롯 램플링은 어머니의 헌신이 공허해지는 순간 체념을 연기의 리듬으로 구현한다. 장녀 티모시아 역의 케이트 블란쳇은 과묵함 속에 깊은 내면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마지막 편에서 쌍둥이 남매는 연대, 공감, 분열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마주하는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영화는 아버지, 어머니, 남매라는 관계가 더 이상 혈연이라는 공동체로 묶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영화 속 가족 구성원들은 싸우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각자의 고립 속에서 관계를 공유할 뿐이다. 즉 가족 갈등의 드라마가 아니라 갈등을 문제 삼지도 않는 상태를 그린다. 싸우지 않기 때문에 평온해 보이지만, 그 점에서 더 깊은 단절을 드러낸다.
이 영화가 가족을 다루는 방식은 하나의 우화에 가깝다. 이 영화 속 가족은 협력도, 연대도, 책임의 공유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는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요구할 수도 없으며 의무감조차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한나 야나기하라의 장편소설 <리틀 라이프>에서의 인간 관계처럼 사랑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전능한 것으로 만들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만큼의 가족애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가 된 것이다. 가족은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