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명이 보통명사화한 ‘라이방’
한때 한국에선 라이방을 쓰고 한껏 멋을 뽐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선글라스 하면 ‘라이방’이었다. 한국에서 선글라스의 대명사로 통하던 이 ‘라이방’은 원래 고유명사였다. “1937년 미 공군이 비행사들의 비행 시 강렬한 태양광선을 차단할 수 있는 안경 제작을 바슈롬사에 의뢰해 만들어졌다. (중략)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이 낀 안경으로 기억에 새롭고 5·16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장군이 이 안경을 즐겨 착용했었다.” 한 신문이 1990년 7월 25일 자에서 ‘세계의 명품 안경’을 소개한 대목이다.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레이밴(Ray Ban)’이다. ‘광선(ray)을 차단(ban)한다’는 뜻이다. 우리 언론에는 대략 1960년대 들어 ‘라이방’이 등장하는데,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이들이 레이밴 선글라스를 ‘라이방’이라고 불러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콩글리시’다. 요즘 그 라이방이 다시 뜨고 있다. AI와 함께 그 인기가 부활한 셈이다. 이제는 멋보다 첨단 정보기기로 변신했다.
‘Ray Ban’은 요즘 표기로는 ‘레이밴’이지만, 그 원조 격인 ‘라이방’도 우리말 한 조각으로 남아 있다. 당연히 틀린 표기도 아니다.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오른 정식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테가 가는, 색깔이 있는 렌즈를 끼운 안경. 상품명에서 나온 말이다”로 풀이한다. 이 풀이는 우리말을 형성하는 수많은 어휘 가운데 특정의, 중요한 정보 하나를 알려준다. ‘라이방’이 ‘레이밴’과 달리 범용성을 띤 말로 굳어져 쓰인다는 사실이다. 원래 상품명, 즉 고유명사였던 말이 보통명사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호빵·버버리’ 등 일반명사로 발전
고유명사가 일반명사로 확대되고 전이되는 것은 그 명사에 상징성이 더 커졌음을 나타낸다. 널리 알려진 말 몇 가지만 들어보면, 샌드위치를 비롯해 버버리, 샤프, 지프, 호치키스, 포크레인, 크레파스, 바리캉, 노트북, 스카치테이프 등 상당히 많다. 이들은 상품명이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예다. 즉 고유명사의 일반명사화인 것이다. 가령 버버리가 곧 트렌치코트를 말하고, 샤프펜슬이 가는 심을 넣어 그것을 밀어내 쓰게 만든 필기도구를, 지프차가 비슷하게 생긴 자동차를 가리키는 말의 대명사가 된 게 모두 그런 일반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수사학적으로는 제유법의 일종인 ‘환칭’에 해당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우리말에도 이런 사례가 제법 있다. 삼립식품에서 1971년 출시해 선풍적 인기를 끈 ‘호빵’이 대표적이다. 애초 ‘호호 불면서 먹는 빵’이라는 의미에서 ‘호빵’이라 이름 지은 상품명이 지금은 보통명사로 바뀌었다. 국어사전에선 이를 “밀가루 반죽 속에 팥이나 야채 따위의 소를 넣고 찜통이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쪄 먹는 빵. 상품명에서 유래하였다”라고 설명한다. “커피에 넣어 먹는 ‘크림(cream)’을 흔히 이르는 말”인 ‘프림’도 같은 사례다. 동서식품에서 상품화한‘프리마(Frima)’에서 온 말이다.
고유어 ‘수세미’도 마찬가지다. ‘수세미’는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을 뜻하는데, 옛날엔 그 열매 속 섬유로 그릇을 닦았다. 그러다 오늘날엔 공장에서 만든 설거지 도구를 ‘수세미’라고 한다. 기존의 의미 외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져 그게 더 많이 쓰이는 경우다. 상표명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고유 의미가 확대돼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대표적인 우리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