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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한시공방(漢詩工房)] 눈 맞아 휘어진 대나무, 元天錫(원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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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이프이스트-한시공방(漢詩工房)] 눈 맞아 휘어진 대나무, 元天錫(원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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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

    元天錫(원천석)



    - 『校本歷代時調全書』<글씨:서예가 강성태>

    [시조의 현대역]
    눈 맞아 휘어진 대나무를
    뉘라서 굽었다 하는고
    구부러질 절개라면
    눈 속에서 푸르겠느냐
    세한에 외로운 지조는
    아마도 너뿐인가 하노라


    [태헌의 한역]
    被雪竹自?(피설죽자유)
    誰人稱屈曲(수인칭굴곡)
    節介易可彎(절개이가만)
    何爲雪裏綠(하위설리록)
    歲寒示孤節(세한시고절)
    君外復有孰(군외부유숙)

    [주석]
    · 元天錫(원천석,1330~?) :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은사(隱士)로 자는 자정(子正)이고 호는 운곡(耘谷)이며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한때 태종 이방원(李芳遠)의 스승이었던 인연으로 은총을 내리려고 하였으나 세상의 어지러움을 보고는 치악산(雉岳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당시의 사적(事績)을 적은 야사(野史) 6권을 저술하였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 被雪(피설) : 눈을 입다, 눈을 맞다. / 竹(죽) : 대나무. / 自(자) : 스스로, 저절로.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유) : 휘다.
    · 誰人(수인) : 어느 사람, 누구. / 稱(칭) : 칭하다, 일컫다, 말하다. / 屈曲(굴곡) : 굽어 꺾여 있는 상태나 그런 굽이를 가리킨다.
    · 節介(절개) : 신념이나 신의 따위를 굽히지 아니하고 굳게 지키는 꿋꿋한 태도. / 易(이) : 쉽게, 쉽사리. / 可彎(가만) : 굽어질 수 있다, 굽어질 가능성이 있다.
    · 何爲(하위) : 무엇 때문에, 어찌하여, 왜. / 雪裏(설리) : 눈 속에, 눈 속에서. / 綠(녹) : 푸르다.
    · 歲寒(세한) :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이다. / 示(시) : ~을 보여주다. / 孤節(고절) : 홀로 깨끗하게 지키는 절개, 외로운 지조.
    · 君外(군외) : 그대 외에. / 復(부) : 다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有孰(유숙) : 누가 있는가?



    [한역의 직역]
    눈을 맞아 대나무가 절로 휜 건데
    어느 사람이 굽었다고 말을 하나?
    절개가 쉽사리 구부러질 것이라면
    어찌하여 눈 속에서 푸르겠는가?
    세한에 외로운 지조 보여주는 것
    그대 외에 다시 누가 있겠는가?

    [한역노트]
    역자는 애초에 ‘겨울 대나무’를 주된 소재로 삼은 김지하 시인의 「겨울에」라는 제목의 시로 칼럼을 발표하려고 준비하다가 도중에 그만두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칼럼을 거의 다 써둔 상태에서 부득이 포기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작고한 시인들의 시를 한역(漢譯)하여 소개하자면 우선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시인의 유족이나 그 저작권을 위임받은 단체와 접촉하여 게재 허락을 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결코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생각 외로 크게 여겨지는 게재료보다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기실 그 협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작성해야만 하는 ‘서류’였다. 이러한 번거로움 때문에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망설이다 포기한 것이 역자뿐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역자는 사실 김지하 시인의 「겨울에」에 대한 칼럼을 준비하기 이전부터 ‘겨울 대나무’라는 그 이미지에 이미 필(feel)이 꽂혀 있었기 때문에, 원천석(元天錫) 선생의 시조도 언제부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김지하 시인의 시에 대한 칼럼 포기를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지하철 2호선 사당역 플랫폼에서 원천석 선생의 이 시조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 역자의 뇌리를 스쳤던 것은 기쁨이나 반가움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 선후나 순서와 같은 ‘논리’였다. 역자가 「겨울에」에 대한 칼럼을 올해에 소개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아주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역자의 선택을 두고 “꿩 대신 닭”이라고 하면 안 된다. 역자에게는 김지하 시인의 시도, 원천석 선생의 시조도 다 꿩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두 찬란하게 빛을 더하는……

    역자의 때아닌 넋두리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시조니만큼 수험생(受驗生)과 같은 심정으로 이 시조에 대해 개략적으로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간단히 말해 원천석 선생이 지은 위의 시조는, 시련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자신의 절개를 대나무에 빗대어 노래한 작품이다. 대나무가 눈의 무게에 눌려 어쩔 수 없이 휘어지기는 하지만 구부러지지는 않는 모습은,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충신의 충절을 상징하는 것이다. 휘어지는 것과 구부러지는 것을 차별적으로 얘기한 선생의 뜻에 무게중심을 두고 이 시조를 보자면, 역자가 한역한 말인 ‘굴곡(屈曲)’은 단순히 구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구부러져 꺾어지는, 그러니까 절곡(折曲)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시조에서는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한 가지 색깔로 덮어버리는 ‘하얀 눈의 빛’이 시련과 강압의 빛이라면, 눈 속에서도 변함이 없는 ‘푸른 대나무의 빛’은 절개와 신념의 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눈 속에서도 푸른 대나무의 빛은 휘어질지언정 구부러지지는 않는 모습과 함께 충절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이 시조에서 핵심 소재가 된 ‘대나무’에 대해 좀 얘기해 보기로 하겠다. 옛사람들의 대나무에 대한 사랑은 정말로 ‘진심’이어서 대나무를 의인화시켜 ‘차군(此君)’으로 부르기까지 하였다. ‘此君’은 ‘이분’ 또는 ‘이 사람’이라는 뜻인데, 중국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가리켜 “어찌 하루인들 이분 없이 지낼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耶]”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역자가 시조를 한역하는 과정에서 “너뿐인가 하노라”의 ‘너’를 굳이 ‘君’으로 한역하였던 것은 이 고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뿐인가 하노라”에서 ‘뿐’이라는 글자의 문자적 의미에 집착하여 “세한고절(歲寒孤節)의 표상(表象)으로 들 수 있는 것에는 대나무 외에 소나무도 있는데?”라고 반문하는 독자가 혹 있을지 모르겠다. 소나무가 대나무와 마찬가지로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에 송죽(松竹)이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지만, 대나무는 곧게 자란다는 점에서 소나무와는 차별적이다. 물론 원천석 선생이 이 차별성을 전제로 하여 대나무를 두고 “너뿐인가 하노라”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뜨락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대나무뿐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앞서 이미 대나무의 속성을 거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원천석 선생이 이토록 높이 평가한 ‘대나무’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독자들께서는 혹 아시는지?



    예로부터 대다수의 시인묵객들은 원천석 선생처럼 대나무를 ‘세한고절’ 등으로 일컬으며 그 ‘속성’을 예찬하였더랬다. 그러나 어느 무명씨는 대나무의 ‘용도’에 착안하여 그 운명을 한탄하는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겼다.

    백초(百草)는 다 심어도 대는 아니 심을 것이
    젓대는 울고 살대는 가고 그리느니 붓대로다
    구태여 울고 가고 그리는 대를 심을 줄이 있으랴!


    대나무는 용도가 무척이나 다양하여 시조에서 언급한 피리, 화살, 붓의 재료가 되는 외에도 아이들이 타고 노는 죽마(竹馬), 낚싯대, 자리[筵], 바구니 등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대나무 입장에서 보자면 정작 고달픔을 면하지 못하는 불운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무명씨는 대나무를 심지 않으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대나무는 정말 슬프지 않을까 싶다. 이 또한 충신의 마음인 것일까?

    역자는 삼장(三章)으로 구성된 평시조를 6구로 이루어진 오언고시(五言古詩)로 한역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시에 없는 말을 보태기도 하고 원시의 표현을 약간 달리하기는 하였으나 원시의 뜻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曲(곡)’, ‘綠(녹)’, ‘孰(숙)’이다. 위의 해설 가운데 일부는 역자의 졸저 『사조시선(謝?詩選)』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다.

    2026. 1. 27.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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