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2024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확산된 반(反)ESG 흐름은 기후위기 대응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ESG 금융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미 녹색인’ 분야에만 자본이 몰리고, 철강·시멘트·화학처럼 가장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의 전환은 외면됐다는 비판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이 막힌 이들 산업에서 감축이 지연되며 반발만 키웠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이다. 최근 출간된 『전환금융』은 녹색금융이 포착하지 못한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그리고 금융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책은 ‘지금 얼마나 친환경적인가’가 아니라, 넷제로(Net Zero)를 향해 얼마나 실질적인 전환 경로를 밟고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형나 서울대 교수는 서문에서 “기후위기는 일부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도전”이라고 진단한다. 발전 부문에서는 재생에너지 확산이, 도로 수송에서는 전기차 보급이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철강·시멘트·화학 등 소재 산업과 항공·해운 같은 난감축(hard-to-abate) 부문은 여전히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산업이 ‘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는 이유로 금융 지원에서 배제될 경우, 경제 전체의 탈탄소 전환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재 산업은 단일 산업이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반을 떠받치는 기반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전환이 멈추면 다른 산업의 탄소 감축도 함께 막힌다.
전환금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아직 기술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고, 비용도 크며, 시장 수요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민간 기업이 혼자서 탈탄소 투자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전환금융은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술 실증과 인프라 구축, 초기 시장 형성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을 금융이 함께 뒷받침하자는 접근이다.
물론 위험도 적지 않다. 아직 ‘완전히 녹색’이 아닌 기술에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그린워싱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투자 회수도 쉽지 않다. 책은 전환금융의 성패가 넷제로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 정부의 일관된 정책 신호, 금융권의 위험 분담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전환금융이 기후금융의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산업 경쟁력과 일자리,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환금융 프레임워크를 제시했고, 일본은 녹색전환(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의 일환으로 2024년 세계 최초의 주권 전환채권을 발행해 8000억 엔 이상을 조달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탄소 집약 산업의 현실적 감축 경로에 자본을 연결하는 실험”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한국형 전환금융’ 도입을 정책 과제로 검토하기 시작했고, 금융권 역시 전환금융을 단순한 녹색금융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는 지속가능금융의 한 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배출권거래제, 정책금융, 기후대응기금, 그린뉴딜 등 정책 설계에 직접 참여해 온 전문가들과 금융 현장에서 기후금융을 다뤄온 실무자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경험과 해외 사례는 ‘탄소 감축은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독자에게 전환금융이라는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기후위기 대응이 더 이상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산업과 금융의 구조를 바꾸는 문제로 다가온 지금, 『전환금융』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