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그룹이 최근 ‘탈(脫)오라클’ 완료를 선언했다. 2019년 ‘글리제 프로젝트’라는 깃발을 걸고, 오라클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대체하기 시작한 지 6년여 만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톡을 서비스하는 본사를 비롯해 계열사 대부분이 오라클에서 오픈소스로 전환을 완료했다”고 말했다.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도 얼마 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독립’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약 1200개 소프트웨어 구독을 끊고 독자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절감한 구독료는 연 200만달러(약 29억원)에 달한다. 세바스티안 시미앗코브스키 클라르나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 덕분에 더 가볍고 품질 좋은 자체 기술 스택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 앤스로픽이 SAP의 최대 경쟁자
SaaS 산업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독일의 마이크로소프트(MS)로 불리는 SAP 주가는 지난해 3월 유럽 시가총액 1위에서 21일(현지시간) 3위로 내려앉았다. 그사이 주가가 25% 하락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사 ASML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세일즈포스는 지난해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달성했는데도 최근 한 달간 주가가 10% 떨어졌다. AI 클라우드 분야가 부각되며 ‘황제주’로 주목받은 오라클 주가 역시 최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SaaS 기업의 주가 하락은 AI 코딩 도구 발전 때문이다. 기업용 AI 에이전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앤스로픽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클로드 코드’라는 AI 도구를 활용하면 과거 수개월에서 수년이 소요되던 소프트웨어 개발 주기를 2주 내외로 단축할 수 있다. 애니스피어의 ‘커서(Cursor)’도 기업의 소프트웨어 개발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비(非)IT 기업에도 소프트웨어 내재화 문을 열고 있다. 자체 개발 역량이 뛰어난 IT 기업에만 국한되던 ‘SaaS 독립’이 보다 일반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美 AI 빅테크 독점 더 굳어지나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국내 플랫폼 업체도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내재화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과 함께 구축한 ‘중앙은행 소버린 AI’ 프로젝트는 네이버의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네이버는 클라우드 인프라, 대규모언어모델(LLM), 데이터 처리 스택을 모두 자체 기술로 제공했다. 쿠팡 역시 물류관리시스템(WMS), 수요 예측, 재고 관리, 배송 최적화 소프트웨어를 대부분 자체 개발해왔다.전문가들은 SaaS 기업 추락이 구글, 오픈AI, MS 등 미국 AI 빅테크의 독과점 현상을 부채질할 것으로 관측한다. 소비자용 소프트웨어 분야는 AI 빅테크에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의 대명사인 어도비 포토샵은 챗GPT에서 직접 구동된다. 챗GPT에서 포토샵을 선택한 뒤 “사진 배경을 흐리게 해달라”고 입력하면 별도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편집이 가능하다. 여행·예약 서비스 익스피디아, 커머스 플랫폼 인스타카트와 타깃 등도 챗GPT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는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GUI)에 기반한 기존 소프트웨어가 자연어인터페이스(NLI) 중심 생태계로 흡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GUI가 ‘클릭과 드래그’를 학습해야 하는 방식이라면 NLI는 채팅과 음성으로 의도를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는 “범용 AI 에이전트가 내년쯤 일반화돼 기업 데이터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 많은 중소형 SaaS 기업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최영총 기자 insid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