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형 집행 정지! 멈추어라!" 1896년 10월2일, 고종의 다급한 명령이 한국 최초의 전화기 '덕률풍'('텔레폰'의 한자음 표기)을 타고 인천 감옥으로 날아갔다. 을미사변 직후 '국모보수'(國母報讐·국모의 원수를 갚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앞두고 있던 청년 김창수를 죽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 청년이 바로 훗날 '백범 김구'. 고종의 이 전화 한 통은 대한민국 통신 역사에서 극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근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이 순간이 140여년 세월을 지나 광화문 한복판에서 부활했다. KT는 21~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 West 2층에 통신 140년의 헤리티지를 집대성한 체험형 상설 전시관 'KT 온마루'(이하 온마루)를 조성하고 개관 행사를 가졌다. 광화문은 1885년 한국 통신의 시초인 '한성전보총국'이 세워진 상징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온마루는 '모든'을 뜻하는 '온'과 '가장 높은 곳이자 중심이 되는 장소'를 뜻하는 '마루'라는 의미를 담은 순우리말 조합이다. 온마루는 통신 사료를 활용해 체험형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의 회랑',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감상할 수 있는 '빛의 중정', 주기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팝업 공간 '이음의 여정'으로 구성됐다.
문화재부터 AI까지…이동통신의 어제와 오늘

첫 번째 파트인 '시간의 회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고종이 사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기 덕률풍이 있다. 덕률풍은 전화기의 영어 이름인 텔레폰(Telephone)과 비슷한 한자 발음을 가져다 쓴 것이다. 전시장에는 이 외에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초기(1890~1950년대) 전화기들과 1가구 1전화 시대를 연 국산 전자식 교환기 'TDX-1' 등이 실물로 전시돼 사료적 가치를 더한다.추억을 자극하는 소품들도 가득했다. 1990년대 개인 이동통신 시대를 상징했던 '삐삐'와 카폰, 이제는 골동품이 된 두꺼운 종이 전화번호부 등이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층에는 이색적인 경험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였다. 나만의 공중전화카드를 제작하는 D.I.Y. 굿즈 체험 등 이색 콘텐츠도 마련됐다.
총 5막으로 짜인 시간의 회랑은 1막(전신·전보)에서 1885년 첫 전신주가 세워지고 전선을 따라 전보가 오가던 시대의 광화문 거리를 재현했다. 2막(전화)에서는 덕률풍부터 손가락으로 돌리는 다이얼 전화기, 공중전화 등이 전시됐다. 3막(인터넷)은 국내 최초의 해저 광케이블 및 무궁화 1호 위성 개발, 4막(이동통신)은 삐삐부터 시작된 휴대폰의 진화, 마지막 5막(초연결)은 5G를 기반으로 모든 것이 이어진 세상을 표현했다.
두 번째 파트인 '빛의 중정'은 빛과 미디어가 어우러진 몰입형 미디어 아트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곳에는 1982년 세계에서 열 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대한민국의 전화 교환기 TDX를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 영상을 선보인다. 수동적 감상을 넘어 고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전시로, 관람객이 입장 전 키오스크에서 얼굴을 촬영하면 AI가 디지털 아트로 변환해 전시 콘텐츠의 일부로 구현한다. 관람 후에는 QR코드를 통해 결과물도 받을 수 있다.
이어지는 '이음의 여정' 공간은 3~4개월마다 콘텐츠가 바뀌는 팝업 형태로 운영된다. 현재는 AI와 함께 그림을 그려 에코백을 만드는 'AI 라이브 드로잉 존'을 운영하고 있다. 또 마련된 11미터 규모의 대형 LED 미디어 방명록에 방문 소감을 남기면, 재방문 시 검색 기능을 통해 추억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신난 아이들, 향수 잠긴 부모들…"광화문 랜드마크 되겠다"
온마루는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한경닷컴이 수요일인 지난 21일 오후 2시께 온마루를 방문했을 때 관람객 대부분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 가정으로 보였다. 아이들은 'AI 라이브 드로잉' 등 손으로 직접 만지며 체험할 수 있는 파트에 주로 머물렀다. 반면 부모들은 과거를 연출한 파트에서 향수에 잠긴 모습이었다. "엄마 아빠 빨리 와", "엄마 아빠 이리로 와봐", "안 오고 뭐 해"라는 아이들 보채는 소리가 들린 이유다.초등학생 아이 방학을 맞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는 40대 여성은 "서울에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네이버 블로그를 보고 와봤는데, 괜찮은 것 같다"며 "예전에 썼던 물건들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이 여성의 초등생 자녀는 "이것저것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면서 본인이 그린 그림을 자랑하기도 했다.
KT는 온마루가 광화문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 이동통신 산업의 뿌리와 회사의 미래 비전을 동시에 전달한다는 목표다. 전시는 일요일을 제외한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개방되며, 사전 예약을 통해 국·영문 도슨트 투어도 가능하다.
윤태식 KT 브랜드전략실장(상무)은 "온마루는 대한민국 정보통신 140여년의 역사와 KT의 헤리티지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브랜드 경험 공간"이라며 "광화문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KT만의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을 담은 새로운 전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