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이 수년간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을 서로 참고해 조정하는 방식으로 담함했다고 보고 총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21년 12월 도입된 공정거래법상 ‘정보교환 담합 금지’ 규정이 처음 적용된 사례로, 관행처럼 여겨졌던 업체 간 정보 공유 행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각사당 500~800억 과징금 결정
21일 공정위는 이들 4대 시중은행이 부동산 LTV와 관련한 내부 기준 정보를 상호 교환·활용해 담보대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은행별 과징금은 하나은행 869억원, 국민은행 697억원, 신한은행 638억원, 우리은행 515억원이다. 2023년 조사를 시작한 뒤 은행권 반발 등으로 심사가 길어지며 결론까지 약 3년이 걸렸다. 조사 결과 은행들은 자신의 LTV가 다른 은행보다 높으면 대출 회수 리스크를 우려해 낮추고, 반대로 낮으면 고객 이탈을 우려해 높이는 방식으로 서로의 기준을 참고하며 LTV를 장기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타행 평균 대비 5%포인트 이상 차이날 경우 조정하는 내부 기준을 마련하거나, 직접 만나 인쇄물 형태로 정보를 받아온 뒤 이를 수기로 옮기고 자료를 파기하는 등 정보 교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한 정황도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 같은 정보 교환으로 은행 간 경쟁 변수였던 LTV가 사실상 ‘관리 대상’이 되면서 경쟁이 약화됐다고 판단했다.
2조 언급되던 과징금, 2000억대로 대폭 축소
공정위는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관련 매출’을 실제 경쟁 제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본 기업·사업자 담보대출로 한정했다. 대출 규제 국면에서 은행들이 이미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확보한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LTV를 공격적으로 높여 리스크를 감수하며 경쟁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정보 교환이 ‘위험 회피 수단’으로 작동해 경쟁을 제한했다고 봤다.특히 중소기업·소상공인은 신용대출 한계로 담보대출 의존도가 높은데, 은행들이 LTV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서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됐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실제 2023년 기준 담합에 참여한 은행들의 평균 LTV는 비담합 은행보다 7.5%포인트 낮았고, 공장·토지 등 기업대출과 연관성이 큰 비주택 부동산에서는 격차가 8.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반면 정부 규제가 직접 작동한 개인 주택담보대출은 과징금 산정에서 제외됐다. 공정위는 해당 기간 가계대출의 경우 LTV·DSR 규제로 대출 한도가 사실상 정해져 있어 은행 간 자율적 경쟁 여지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당초 업계에서 2~3조원대까지 거론되던 과징금 규모는 2000억원대로 줄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정보교환 담합’에 대한 첫 집행 사례라는 점을 고려해 위반기간도 제한적으로 산정했다. 법 시행 시점(2021년 12월)부터 일괄 적용하는 대신, 시행 이후 정보교환 행위가 다시 확인된 시점인 2023년 2월부터로 한정했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은 조 단위 과징금은 피하며 일단 숨을 돌린 분위기지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참고용으로 정보를 교환했을 뿐 담합은 아니라며 반발하고 있다. 향후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관행처럼 주고받던 영업정보, 이젠 '처벌 대상'
이번 제재는 2021년 12월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상 ‘경쟁제한적 정보 교환 담합 금지’ 규정이 처음 적용된 사례다. 정보교환 담합은 가격을 얼마로 정하자는 명시적 합의가 없더라도, 경쟁 사업자 간에 경쟁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영업 정보가 반복적·상호적으로 오가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전통적인 가격 담합보다 적용 범위가 넓은 만큼,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정보 공유 행위도 경쟁에 미친 영향에 따라 제재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에도 유사한 쟁점은 있었다. 공정위는 2013년 대형 트럭 제조사들의 판매대수·재고·가격 계획 정보 교환, 2015년 라면업체들의 원가 변동과 가격 인상 시점 정보 공유를 문제 삼아 처분을 내렸지만 당시에는 정보교환 담합을 직접 규율하는 법적 근거가 없어 대법원에서 처분이 취소됐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