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생각보다 짙고 깊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베컴 가문의 불화설은 단순한 유명 셀럽의 가십거리를 넘어, 현대 가족이 직면한 구조적 모순과 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생 통제당했다"는 아들의 절규와 "내 결혼식의 주인공을 빼앗겼다"는 며느리의 호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침묵과 방어로 일관한 부모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단순히 누가 더 잘못했느냐의 흑백논리로 접근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대신 이 갈등을 가족이라는 브랜드가 겪는 성장통이자, 관계의 재설정을 위한 진통으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권력과 경계의 충돌<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우리는 흔히 고부 갈등을 유교적 위계질서가 강한 동양, 특히 한국적인 특수성으로 치부하곤 한다. 시어머니의 권위와 며느리의 복종이라는 도식 말이다. 하지만 베컴 가문의 사례는 고부 갈등이 문화권을 초월한 보편적인 권력 투쟁이자 영역 다툼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동양의 갈등이 효 사상을 기반으로 한 수직적 위계에서의 억압이라면, 서양의 갈등은 철저한 개인주의와 독립된 핵가족의 경계가 침범당했을 때 발생하는 수평적 충돌이다. 서구 사회에서 성인이 되어 결혼한다는 것은 원가족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의미한다. 그런데 빅토리아 베컴이 며느리의 웨딩드레스 문제에 개입하거나, 신랑, 신부의 첫 댄스를 가로챘다는 의혹은 서양적 가치관에서 볼 때 명백한 월권이자 심각한 영역 침범이다.
이는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한 소유물로 인식했음을 방증한다. 즉, 이 갈등의 본질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자녀의 독립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의 통제 욕구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자녀 세대의 투쟁인 것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불안과 삼각관계<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가족 치료의 권위자 머레이 보웬의 가족 체계 이론은 이 상황을 더욱 정밀하게 설명해 준다. 보웬은 건강한 가족 관계의 핵심으로 자아 분화를 꼽았다. 이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정서적 덩어리에서 개인이 얼마나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베컴 부부, 특히 빅토리아 베컴의 행동은 자아 분화 수준이 낮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부모가 자신의 불안이나 정서적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자녀를 끌어들이는 것을 삼각관계 형성이라 한다. 어머니가 며느리를 배제하고 아들과 지나치게 밀착하려 했던 행동은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라, 아들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들 브루클린이 가족과 절연을 선언하며 아내 편에 선 것은, 부모의 정서적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 본능적인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 통제로 느껴질 때, 자녀는 숨 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극단적인 단절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는 그가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부모의 그늘이 짙고 무거웠음을 반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아들이자 남편, 관계의 재설계를 위한 결단<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베컴 가족 문제에서 가장 결정적인 열쇠를 쥔 인물은 결국 남편이자 아들인 브루클린이다. 많은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고부 갈등에서 며느리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소외감은 이혼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남편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가정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브루클린은 침묵하거나 양쪽을 오가며 눈치를 보는 회피형 중재 대신, "나는 아내의 편"이라고 공개 선언하며 부모와 등을 돌리는 파괴적 방식을 택했다. 비록 그 과정은 거칠고 미숙해 보였을지라도, 방향성만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정한 효도는 무조건적인 순종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은 요즘이다. 결혼한 남편에게 최우선 순위는 원가족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아내와 꾸린 새로운 가정이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변을 보면 남편은 부모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는 경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며, 부모에게도 자녀가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님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브루클린의 행동은 요령은 부족했을지언정, 과거의 질서(부모)를 깨고 현재의 가치(아내)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독립 선언이었다고 보여진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베컴 가문의 이야기는 화려한 스타의 가십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가족 내의 미묘한 갈등과 맞닿아 있다. 자녀를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의 서운함,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며느리의 억울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효와 사랑 사이를 줄타기해야 하는 남편의 고뇌. 이 셋 중 어느 누구의 입장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만약 여러분이 이 갈등의 한복판에 선 중재자(남편)라면, 혹은 자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위치에 있다면, 이 엉키고 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가겠는가?
가족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위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참는 것이 미덕일까, 아니면 다소의 진통과 상처를 감수하더라도 확실하게 선을 긋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관계를 위한 길일까?

<한경닷컴 The Lifeist>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
박영실서비스파워아카데미 대표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부 겸임교수
명지대학교 이미지코칭교육 겸임교수
[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고객을 사로잡는 힘, 매혹] 저자
[글로벌코리아 매너클래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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