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지식 생산방식의 심각한 병증이다. 이와 관련해 항공우주 분야 석학인 서울대 A 교수의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떤 테크놀로지를 전공하냐고 물으면 ‘입금 테크’라고 답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혹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 R&D 자금을 따내는 데 지력을 총동원하도록 내몰리고 있다는 자조의 말이다. 공대는 그나마 의대 쏠림을 막자는 ‘계몽’의 수혜자여서 연구지원을 받기 위해 시장·산업과의 연계를 고민이라도 하지만, 자연·인문·사회과학 등 ‘기타’ 학문의 연구는 논문이라는 활자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돌이표 지식 생산
한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골방 지식’만 쏟아낸다. 서울대조차 그렇다. 학교의 지식 생산자들은 개교 이후 거의 그대로인 성냥갑 같은 벽돌 건물에 갇혀 논문을 양산하는 데 골몰한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복도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교수들의 연구실은 대체 언제 열릴까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 적막 속에 웅크리고 있다. ‘노벨상은 복도와 카페테리아에서 나온다’는 미국 대학의 격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할 남의 나라 얘기다.공무원은 어떤가. 그들은 보고서의 세상에 산다. 출연연구소가 만들어 준 표지 그럴듯한 ‘세계의 동향’에다 입금 데크에 통달한 교수들의 자료를 종합해 ‘윗선’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드는 게 세종 공무원들의 목표다. 세종의 지식은 선거 때마다 폐기와 복붙(복사&붙이기)을 반복하고, 부처 간 칸막이로 질식당한다. ‘행시 출신 사무관은 관할 산업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배 공무원들의 덕담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영웅담일 뿐이다. 이런 방식의 지식 생산으로 관료들은 ‘국가 10대 전략기술’유의 미래를 제시한다. 교수들은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보고서에 명시된 연구비 숫자를 좇아 또 다시 입금 테크 전략을 세운다.


中의 축적, 美는 혁신적 파괴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중국의 변화다. 2019년 완공된 칭화대의 미술·과학·기술 융합센터는 내부를 루프로 연결해놨다. 한국·일본식 사각형 동선을 없애버리고, 계단·라운지를 ‘열린 무대’처럼 설계했다. 매일 수천 명이 마주치도록 설계한 미국 메사츄세츠공대(MIT)의 250m에 달하는 ‘인피니트 코리더’를 본뜬 것이다.기본적으로 중국이 ‘국가 대계’에 성공할 수 있던 건 지식 축적에서 남다른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이비 과학’을 신봉했던 중국과학원은 1월 현재 3개의 직속 대학과 12개 분원(分院), 110여 개의 분야별 연구소, 130여 개의 국가급 중점 실험실·엔지니어링센터, 210여 개의 야외 관측·시험기지를 운영하는 거대과학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과학원 소속 당원들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다음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기록하고, 축적한다.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일컬어지는 중국의 AI반도체 1위 기업 캠브리콘은 2016년 중국과학원에서 스핀오프 형태로 탄생했다.
미국은 어떤가. 단백질 접힘을 AI로 읽어내 인류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데미스 허사비스, 인류의 화성 정착을 언젠가 실현하고 말겠다는 일론 머스크,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현생 인류를 뛰어넘는 슈퍼AI를 개발하려는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업가들이 지금도 미국의 수많은 청년의 열정을 자극하고 있다. 논문과 보고서의 굴레에 갇힌 현재의 지식 생산 구조로는 미·중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