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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 칼럼] 끝없는 갑을(甲乙)전쟁…한국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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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 칼럼] 끝없는 갑을(甲乙)전쟁…한국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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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가피하게 위계(hierarchy)로 이뤄져 있다. 현대 사회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념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만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설계된 위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상사와 부하,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는 권력, 정보, 지식, 자본의 소유 정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권력 비대칭의 산물이다. 인류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 동일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합의에만 의존해 왔다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신속한 실행력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인민의 평등을 주창하는 공산주의 사회조차 극단적 위계인 1인 독재 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평등이라는 이념과 위계라는 질서가 서로 다른 층위의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위계의 본질은 협력이다. 위계를 구성하는 단위들은 얼핏 보면 아래위가 분명한 피라미드 조직이나 연쇄적 먹이사슬 구조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긴밀하게 작동한다. 위계 내부의 공생전략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 삶에 관여하는 정부, 국회, 기업, 학교, 병원, 사회단체 모두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조직 가운데 단위 간 협력이 가장 잘돼온 것들이다. 그래서 여태껏 유지돼온 것이다.


    사회 조직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유기체도 그러하다. 곰팡이는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을 흡수하는 대신 식물 뿌리가 흡수하기 어려운 미네랄을 공급해준다. 곤충은 부지런히 꽃가루를 나르는 대가로 꽃에서 양분을 얻는다. 사람들 몸에 무수히 존재하는 미생물과 바이러스는 생명 공간을 얻는 대신 소화와 면역 기능을 도와준다. 이런 협력과 공생의 원리가 농경사회의 인간과 가축, 산업사회의 자본과 노동력으로 옮겨가면서 보다 효율적이고 응집력이 큰 사회기구들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갑(甲)과 을(乙)의 갈등·충돌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이혜훈 김병기 강선우 같은 정치인들의 그릇되고 교만한 행태가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지난 십수 년간 숱한 ‘갑질’ 논란을 목격해 왔다. 물론 과거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을이 더 이상 참지 않고 녹음과 화면 캡처로 대항하거나 파급력이 큰 SNS에 폭로한다는 것이 종전과 다를 뿐이다. 갑질은 위계 내 구성원들 간 기능적·보완적 관계를 벗어나 위계 자체가 ‘인격적 지배’로 변질될 때 발생한다. 갑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을에게 부당한 억압을 하는 행태는 정치인과 보좌관, 국회 권력과 지방 권력뿐만 아니라 연예인과 매니저, 기업 조직 내 상사와 부하 관계에서도 속속 드러나고 고발된다. 유명인들의 미투나 학폭, 부모 찬스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상단의 갑질이 온존하는 한, 을이 또 다른 을에게 군림하는 양상도 근절되지 않는다. 국회 보좌관은 피감기관에, 1차 협력 업체는 2차 기업에, 연예인 매니저는 생태계 내 하부 단위에 가해자로 돌변하는 식이다. 김경은 강선우에게 을이었지만 서울시 산하기관엔 갑이었다. 서울시 사업이 그의 가족 사업으로 둔갑한 것과 1억원의 공천헌금은 이런 부패사슬이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을 웅변한다. 갑질은 근원적으로 권위주의적 행태다. 상대방을 인격체가 아니라 수단이나 도구로 취급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적 공동체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한다. 경쟁시장에 맡겨야 할 이익 배분을 사유화함으로써 헌법 가치인 ‘기회의 균등’도 앗아간다.

    위계는 업무와 역할의 차이일 뿐, 인간 존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권력과 돈에 취한 갑들은 기존 위계가 끊임없이 도전받고 의심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위계의 정당성은 법적 계약이나 제도적 보호장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알파를 품격이라고 부른다. 한 사회의 품격은 위계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위계의 정점에 있는 갑이 얼마나 낮은 자세로 주변을 살피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다. 선거 민주주의는 달성했을지 몰라도 좌우를 막론하고 힘 있는 자들의 특권의식과 몰염치는 그대로다. 기업 대관조직이 번성하고 로펌 내 전직 관료들이 득세하는 시대, 돈과 인기가 존경받지 못하고 갑질 수단으로 돌변하는 세태, 의원실 카톡 안내 한 번으로 결혼식과 출판기념회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세상에선 갑과 을의 전쟁만 더 격화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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