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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잃은 노래, 가장 많은 말을 하는 노래...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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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잃은 노래, 가장 많은 말을 하는 노래...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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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 1873~1943)는 차이콥스키의 계승자다. 세련된 서구적 취향과 러시아적인 어두운 정서가 융합된 에너지. 그의 음악은 시나브로 심금을 파고든다. 애수를 띤 풍부한 선율미는 한국인 맞춤형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동년배들이 새로운 음악어법을 탐구할 때, 집요하리만큼 19세기의 낭만적 정념에 천착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출발한 정체성(正?性)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음악은 피아노 본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교향곡마저 피아노협주곡 패시지와 유사한 건 역동적인 피아노의 화음 효과에 기반한 것이다. 피아노 연주 기교에 의거한 음의 효과가 교향곡 구축의 기법을 능가한다는 굳건한 주관과 판단 때문. 저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2번과 3번, 그리고 파가니니 주제의 의한 광시곡이 마치 거대한 교향곡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세계에서 독특하면서 또한 간과되는 대목이 가곡이다. 그는 작품(op.4~op.38)까지 71곡을 남겼다. 결코 만만찮은 양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보칼리즈(Vocalise). 1912년, 39세 때 만든 ‘14개의 로망스 op.34’의 마지막 곡. 우선 왜 로망스일까? 독일의 리트(Lied), 프랑스의 멜로디(Melodie), 이탈리아의 로만차(Romanza)에 해당하는 러시아식 장르명이 로망스(Pроманс)다. 로망스는 시에 붙인 노래이긴 하나, 특징적으로 볼 때 문학적 낭송과 서정적 독백을 포함하는 것으로 민요·살롱음악·서정시의 경계를 넘나든다. 보통은 중후장대한 독립 예술 소품으로 취급한다.

    보칼리즈는 독특하다. 원래 의미를 담은 가사 없이 모음으로만 부르는 성악곡을 뜻하며 보통 a/o/u 같은 모음 하나로 끝까지 노래한다. 이 워밍업용 성악 연습곡을 라흐마니노프는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린 셈. 그는 인간의 목소리를 악기로 상정하고 언어·국적·시(詩)의 의미를 제거한 채 순수히 선율과 호흡만으로 감정을 전달한 것이다. ‘말을 잃은 노래, 그러나 가장 많은 말을 하는 노래’가 바로 보칼리즈의 역설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비밀은 14곡의 로망스 중 가장 끝에 위치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말이 닿지 않는 감정 영역의 가치’다. 1곡부터 13곡까지 말로써 감정을 드러낸 후 종국에는 언어 자체를 소거하는 것. 단어도 자음(子音)도 의미도 모두 버리고 호흡과 선율만 남기는 것. “어떤 감정은 말로 표출되는 순간 이미 훼손된다.” 라흐마니노프가 내린 결론이다. 언어의 포기야말로 감정의 극대화일 터. 러시아의 정서는 전통적으로 말보다 침묵, 외향보다 내면, 사랑보다 체념?그리움을 중시하는 정서가 있다. ‘말로 다가섬’, ‘겉으로 드러냄’과 결이 다르다. 보칼리즈야말로 그래서, 노래인 동시에 침묵에 가까운 러시아적인 음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겠다. 보칼리즈를 듣노라면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쁨도 아닌 미묘함이 감돈다.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부유하며 은근히 머무는 정조(情調)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상심(傷心)이나 상실을 견딘 후에 찾아온 고요한 체념의 서정도 잡히고, 울음을 그친 후 안도의 한숨, 혹은 웃음이 끝난 뒤 남아있는 미지근한 기운도 포착된다. 희열도 비탄도 아닌 감정이 침전된 후 피어난 맑은 켜(layer) 같다고나 할까.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가 노래하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뉴질랜드가 배출한 아름다운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 1944~ )가 빼어나게 잘 불렀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아버지의 영향으로 ‘테 카나와’라는 독특한 성(性)을 갖고 있다. 1971년 런던 코벤트가든, 1974년 뉴욕 메트 데뷔 이후 단기간에 정상의 리릭 소프라노로 우뚝 섰다. 1979년 카라얀이 협업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 역으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같은 해 <돈 조반니> 오페라 영화에 출연해 성가를 드높였다. 테 카나와는 두 차례 내한 공연 기록이 있다. 1994년 세종문화회관과 2007년 예술의전당. 나는 20세기에 50세 그녀와 함께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연가(戀歌)’라는 제목으로 한국서 인기를 얻은 번안가요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사랑의 동요(動搖))’를 앙코르로 부르던 테 카나와의 모습이 여태 아른댄다.

    [키리 테 카나와가 노래하는 뉴질랜드 민요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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