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 대학생 콜린 에드워드(27)는 지난해 9월부터 중앙대 언어교육원에서 ‘갭이어’(학업 중 체험 중심 진로 탐색 기간)를 보내고 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계기로 K컬처에 관심이 생긴 그는 ‘한국어 학습이 향후 진로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해 한국에 왔다. 콜린은 “K콘텐츠 인기로 한국어는 미국에 돌아가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언어가 됐다”며 “언젠가 박경리 작가의 <토지> 전권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한국어 실력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 연세대 미주·유럽 유학생 ‘급증’
미주(아메리카)·유럽 지역 청년층 사이에서 갭이어 목적지로 서울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면서 국내 한국어학당을 찾는 외국인 수강생이 급증하고 있다. 안전한 치안과 상대적으로 적은 체류 비용, K컬처 확산에 따른 한국어 학습 기회 등이 맞물린 결과다. 대학가에선 “한국어를 공부하러 체류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학내 교류와 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16일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따르면 어학당 내 미주·유럽 출신 유학생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143명에서 지난해 3250명으로 51.6% 증가했다. 이 기간 미주·유럽 비중은 29.1%에서 35.3%로 6.2%포인트 상승했다.
미주·유럽 젊은 층 사이에서 한국이 ‘갭이어 최적지’로 부상하고 있다. 갭이어란 학업이나 일을 잠시 중단하고 진로 탐색, 여행,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면서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갖는 북미·유럽권 학생들의 문화다. 영어권 대상 유학원인 ‘고고한국’을 통해 입국한 어학연수생은 2019년 250명에서 2024년 1350명으로 5.4배 늘었고, 지난해에는 1500명을 넘어섰다.최근 원화 가치 하락으로 체류비 부담이 줄어든 것도 한국에 머물며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수요가 늘어난 이유다. 유학생들의 모국에서 한국을 향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어 활용도가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유학생의 발길은 서울·수도권을 넘어 지방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부산대 언어교육원 수강생은 지난해 1645명에 달해 서울권 대학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중 북미·유럽 유학생 비중도 16.8%였다.
◇ 대학가 임대시장·상권도 ‘활기’
한국어를 배우려는 유학생이 늘면서 대학가엔 활기가 돌고 있다. 학내에서 내·외국인 학생 간 교류 확대가 두드러진다. 연세대 K팝 댄스동아리 ‘츄러스’는 지난해 하반기 신입 부원 15명 중 7명을 외국인 유학생으로 선발했다. 츄러스 회장 김한을 씨(20)는 “기존 부원이 모두 영어로 소통할 수 있어 올해부터 한국어학당 유학생도 뽑고 있다”며 “유학생들은 한국의 무대 촬영 기술과 버스킹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대학 주변 임대시장과 상권도 외국인 유학생을 반기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을 겨냥한 주거시설 등장이 대표적 사례다. 고려대 인근 ‘홈즈 안암’과 건국대 인근 ‘셀립’은 각각 거주자의 95%, 70% 이상이 외국인 유학생이다. 이 임대주택의 월세는 관리비를 포함해 150만원에 육박한다.
대학 내 어학당뿐 아니라 대학가 주변 민간 어학원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부 어학원은 장기 숙소까지 연계하는 부동산 중개소 역할을 맡으며 장기 체류 수요를 끌어들이고 있다. 홍대 인근에 자리한 LTL랭귀지스쿨은 외국인 대상 홈페이지를 통해 ‘GOSIWON(고시원)’ 등 숙소 정보를 안내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대상 숙박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주거 중개 플랫폼 ‘독립생활’은 대학가 원룸텔, 레지던스 등 숙박시설과 제휴를 맺고 외국인 유학생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석재 연세대 한국어학당 원장(영어영문학과 교수)은 “어학연수를 오는 유학생의 목적은 학업 준비부터 사실상 체험·여행에 가까운 수요까지 매우 폭넓다”며 “유학생 유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