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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칼럼] 2003년 日 정년 대타협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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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칼럼] 2003년 日 정년 대타협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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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2월 16일 일본 도쿄 후생노동성 내 노동정책심의회 회의실은 고성으로 가득 찼다. 경영계 대표인 게이단렌은 “무차별적인 정년 연장은 기업에 대한 사형 선고”라고 주장했고, 노동계 대표인 렌고는 “연금 공백기에 노동자들을 굶겨 죽일 셈이냐”고 맞받았다. 팽팽한 대치 속에서 공익위원이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며 최후통첩에 나서자 결국 렌고는 ‘선별 고용안’을 수용하며 한발 물러섰다. 이때 상황을 다룬 <고령자 고용안정법 개정의 전말>은 “이 ‘악마의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회의장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경영계는 ‘65세 의무화’라는 짐을 졌고 노동계는 ‘선별적 고용’이라는 상처를 입었다”고 적었다.

    당시 위원장이던 세이케 아쓰시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는 “그 무거운 정적 속에서 나는 일본 노사 관계가 최악의 파국을 면하고 ‘평생 현역 사회’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어느 쪽도 완승하지 않았기에 사회 전체가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노사 대타협의 순간이었다.


    이 합의 덕분에 고령 노동자는 일자리를 보장받았고 기업은 재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중 자사 형편에 맞는 ‘계속고용’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얻었다. 특히 계속고용 대상자는 건강 상태, 근무 역량 등 노사 협정을 통해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자로 한정했다. 이때 도입된 선별 고용은 2013년 4월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돼 지난해 4월에야 비로소 65세 고용 전면 의무화가 이뤄졌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의 정년 연장 제도화 과정은 20여 년 전 일본과 너무나 딴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 반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12월 정년연장특위는 2028년이나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65세까지 상향하는 세 가지 안을 노사 양측에 제시했다. 시기만 다를 뿐 하나같이 ‘법정 정년 연장’을 고집한다.


    문제는 이 방식이 초래할 ‘재앙적 결과’다. 법정 정년 연장의 최대 수혜자는 전체 근로자의 12%에 불과한 대기업·공기업 ‘귀족 노조’다. 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 때도 그 혜택을 누린 것은 전체의 20% 남짓이었다. 나머지 비노조나 중소기업 근로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는 당연한 귀결이다.

    진짜 비극은 청년 세대의 채용 절벽이다. 우리는 근속 30년 차가 신입보다 3배 가까이 임금을 받는 지독한 연공급제다. 고령층 한 명의 정년을 늘리면 신입사원 3명의 자리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실제 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고령층 근로자가 1명 늘 때 청년 근로자는 최대 1.5명 감소했다는 분석이 있다. 기업이 짊어질 연간 30조원의 추가 인건비(경총 추산)는 청년 90만 명 채용에 맞먹는 비용이다. 기업을 공공단체로 착각하는 정치가 ‘그냥 쉼’ 70만 명 청년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정년연장특위는 오는 23일 전체회의를 열어 활동 기한을 연장하고 향후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표심을 의식해 노조와 손잡고 밀어붙이는 정년 연장은 한국 경제를 볼모로 한 위험한 도박이다. 민주당은 이제 논의의 주도권을 노사정이 함께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넘겨야 한다. 중립적인 공익위원들이 참여해야 비로소 합리적인 합의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노동계 역시 렌고처럼 타협의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 ‘계속고용 방식’과 ‘대상자 선별’ 등 유연한 대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일본이 고령자 고용률 99.9%를 달성한 힘은 법적 강제가 아니라 ‘제도의 유연성’에서 나왔다. 노조만 승리하고 사회 전체가 패배하는 합의는 재앙의 전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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