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맨해튼의 한 5성급 호텔. 1박 숙박비만 200만원이 넘는 스위트룸에 지난해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사흘간 머물렀다. 내규상 숙박비 상한은 하루 36만원 수준이지만 다섯 차례 해외 출장에서 초과 집행된 금액만 4000만원에 달했다.
1월 8일 정부의 특별감사 결과가 공개되자 닷새 뒤 강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겸직하던 농민신문사 회장과 농협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과도한 보수와 출장비, 불투명한 경영 관행이 다시 도마에 오르면서 농협중앙회장 ‘잔혹사’가 또 한 번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막강한 중앙회장 권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강 회장은 농협중앙회장으로 연간 약 3억9000만원의 보수를 받는 동시에 농민신문사 회장을 겸하며 연 3억원이 넘는 급여와 수억원의 퇴직금을 추가로 챙긴다. 규정상 겸직과 보수 지급 자체는 가능하지만 업무량에 비해 현저히 과도할 경우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에 강 회장이 농민신문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4억원 정도의 퇴직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재단 이사장은 연봉과 퇴직금이 따로 없다. 강 회장은 초과 지출한 출장비 4000만원을 개인적으로 반환하겠다고 밝혔고 인사와 경영 전반은 사업전담대표에게 맡긴 채 농업·농촌 지원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라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농협중앙회장에 쏠려 있다. 중앙회장은 임기 4년 단임제에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농협중앙회 산하 계열사 대표 인사권과 예산권·감사권을 갖고 농업경제와 금융사업 등 경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에 최고경영자(CEO) 인사권이 있지만 농협은행도 중앙회장 입김에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농협중앙회장이 교체될 때마다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 등이 사표를 일괄 제출하고 재신임을 묻는 과정을 밟는 일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이처럼 권한이 한 자리에 집중된 구조 속에서 중앙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반복돼 왔다. 중앙회장직은 한때 정부가 임명하는 자리였지만 민주화 흐름 속에서 1988년 직선제를 도입했다. 전국 1100여 명의 조합장이 직접 회장을 뽑는 방식이다. 이 시점을 현대 농협 회장사의 출발점으로 본다.

◆회장 7명 중 6명이 논란
그러나 직선제 도입 이후 선출된 1~3대 회장들이 모두 임기 중 비리 혐의 등으로 구속되면서 제도 자체가 도마에 올랐다.
한호선 농협중앙회 민선 초대 회장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재임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농협 예산을 전용해 약 4조800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4억1000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1994년 구속됐다.
원철희 2대 회장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는데 재임 중 업무추진비 약 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이후 구속됐다.
정대근 3대 회장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재임했다. 그는 2005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부터 현금 3억원을 수수하고 세종증권 인수와 관련해 5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2007년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3대 회장이 모두 구속되자 정부는 선거 과열과 비리를 막기 위해 2009년 선거 방식을 ‘전체 조합장 직선제’에서 ‘대의원 간선제’로 변경했다. 290여 명의 대표 조합장들이 회장을 뽑는 방식이다. 회장직은 4년 단임제로 제한했다.
이후 임기 중 구속된 사례는 나오지 않았지만 비리 의혹과 특혜에 대한 논란은 이어졌다. 최원병 4대 회장은 직선제와 간선제를 모두 지낸 인물이다. 2007~2016년 임기를 채웠지만 논란이 없었던건 아니다. 당시 최측근 중 25명이 납품 대가로 뇌물과 특혜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최 회장은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측근 비리와 관련해 완전히 자유롭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병원 5대 농협중앙회장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재임했다. 중앙회장 선거 과정에서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임기는 마쳤지만 퇴임 직후 최종심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150만원 벌금형이 확정되며 법상 당선 무효 처분이 확정됐다.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선고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이성희 6대 회장(2019~2024)만 임기 동안 큰 비리나 법적 문제 없이 재임을 마쳤다. 강 회장은 2024년 7대 회장으로 올랐다. 지난해부터 ‘뇌물 1억원 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출국금지도 된 상태다. 경찰은 강 회장이 2023년 말 농협중앙회장에 출마해 당선이 유력하던 시기에 농협중앙회 계열사와 거래 관계에 있는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1억원을 받은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권력의 중심, 조합장들
강 회장은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다시 직선제로 뽑혔다. 간선제에서는 일부 대의원 조합장만 중앙회장 선거권을 갖게 되면서 일반 조합장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됐기 때문이다. 직선제에서는 후보들이 전국 조합장들의 표심을 직접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후보들이 선거 과정에서 공약을 내세우고 필요할 경우 돈봉투까지 활용하며 조합장들의 지지를 얻는 일이 우려된다. 강 회장이 경찰 조사를 받는 것도 농협 유통 관련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가 선거 자금과 연결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다.
조합장의 장기 집권 등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합장은 상임과 비상임으로 나뉜다. 임기는 모두 4년이다. 상임조합장은 두 차례 연임이 가능해 최장 12년까지 재임할 수 있고 비상임조합장은 연임 제한이 없다. 실제 비상임조합장 10명 중 2명은 4선 이상이며 최다선 조합장은 10선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중앙회장 후보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조합장 신분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합장은 장기간 권력을 유지하면서 중앙회장이라는 권력의 정점까지 오를 수 있는 구조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농협법 개정안이 2년 7개월 만에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원회로 넘어갔다. 개정안에는 비상임조합장의 연임 횟수를 최대 2회로 제한하고 지역 농협에 대한 외부 회계 감사 주기를 단축하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법이 시행되더라도 이미 3선 이상을 재임한 조합장들이 다음 선거에서 자동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 시행 시점을 최초 임기로 간주해 앞으로 두 번 더 연임할 수 있다. 장기 집권 관행을 완전히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남아 있는 셈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