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병원·군부대·대학 등을 사칭해 이른바 ‘노쇼사기’를 벌인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원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본지가 군부대 등을 사칭한 노쇼사기 범죄의 거점이 캄보디아라는 사실을 단독 보도한 지 약 1년 만이다.
▶본지 2025년 1월 31일자 A27면 참조
○軍·병원·대학교까지…'간 큰 사칭'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보이스피싱범죄 정부합동수사부(이하 합수부)는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조직적으로 노쇼사기를 저지른 범죄단체 조직원 2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들은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전국 215명, 피해액은 약 3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간 병원·군부대·대학교 등 주요 기관 직원을 사칭해 음식점과 주류업체, 식자재 납품업체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였다.
이들은 1차 유인책과 2차 유인책으로 나눠 범행을 저질렀다. 1차 유인책이 먼저 병원·군부대·대학교 직원을 사칭해 식당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에게 접근했다. 다인원 회식이나 행사 예약 등 대량 주문을 하는 큰 손 고객인 척 신뢰를 쌓은 뒤, 군수용품이나 와인 등 고가 물품을 '지정된 판매처'에서 대신 사달라고 요청했다. 2차 유인책은 해당 판매처를 가장해 "구매 대행 요청을 받지 않았느냐"며 연락했다. 이들은 소상공인에게 요청된 물품을 팔 것처럼 속인 뒤 구매 대금을 해외 계좌나 대포통장으로 송금 받고 잠적했다.
결국 대량 주문은 존재하지 않았고 소상공인은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악용당해 구매를 대행한 물건값만 떠안게 되는 구조다.
○캄보디아 사기단…대본까지 제작

이 조직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등에 콜센터 형태의 범행 거점을 마련하고, 총책 아래 한국인 총괄 관리자를 두는 방식으로 팀장·유인책·모집책 등 역할을 세분화해 범행을 분업화했다. 범행에 앞서 허위 명함과 공문, 물품 구매요청서를 제작하고 피해자 설득용 멘트와 입금 요구 금액까지 사전에 대본 형태로 준비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운 정황도 드러났다.
국방부 명의의 허위 구매 공문이나 특정 부대 마크가 인쇄된 명함을 만들어 물품 담당 장교를 사칭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들은 공문을 통해 “부대에 특정 물품에 대한 긴급 구매 승인이 내려왔다”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주로 제시했다. 이 조직이 사칭한 기관은 군부대뿐 아니라 대학, 병원 등 다양했다. 기관 인근 시장 상인회에 지인이 있다는 허위 발언을 하는 등 골목상권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범행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편취 금액을 900만원으로 맞춘 사례도 있었다.
양국 공조로 신속 수사…1년새 199명 입건
수사는 국정원이 제공한 국제범죄 정보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합수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캄보디아 수사당국과 실시간 국제공조를 벌여 현지에서 조직원 17명을 검거했다. 이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를 거쳐 40일 만에 전원을 국내로 송환했다. 국내에 체류 중이던 조직원 6명도 추가로 검거돼 모두 구속됐다.검찰은 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 총책과 국내에서 범행에 가담했던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범죄 수익 환수를 위해 조직원들의 국내외 계좌를 추적하는 한편 범행에 사용된 대포통장과 자금 흐름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동부지검에 따르면 합수부는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등 외국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원 총 199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103명을 구속했다. 합수부 관계자는 "국경을 넘나들며 소상공인을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 엄정 대응하겠다"며 "해외 거점 범죄에 대해서도 관계기관과의 국제 공조를 지속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유진/김영리 기자 magiclamp@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