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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나비효과…'세계 4위' 국중박, 워싱턴·런던 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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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나비효과…'세계 4위' 국중박, 워싱턴·런던 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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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예술은 '최적의 상태' 또는 '가장 이상적인 지점'을 이르는 단어였다. “경영은 종합예술이다”란 그의 표현이 이를 보여준다.

    그는 실제 예술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수집했다.


    한 작가는 그를 두고 "기업가보단 투철한 철인(哲人)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예술을 향한 지독한 몰입과 탐구는 개인의 만족을 넘어 문화유산을 지켜내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은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다”라고 했다.


    몇 년 전 그의 수장고가 열렸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는 물론 모네,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거장의 그림이 국민에게 공개됐다.

    삼성 일가가 2021년 국립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이건희 회장의 개인 소장품을 기증한 것이다. 국보 40점, 보물 127점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이 평생 모은 소장품 중 2만3000여 점이 포함됐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규모였다.

    K미술 ‘1조 시장’…국중박은 세계 4위로

    이건희 회장의 예술에 대한 애정이 응축된 컬렉션은 한국 미술시장을 바꿔놨다. 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 4시간 이상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박물관 굿즈는 ‘완판’됐다. 이건희 컬렉션 이후 글로벌 아트시장에서 한국의 체급도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이 열풍은 2022년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의 서울 유치로 이어졌고 외국 화랑들의 한국 진출 러시를 낳았다. 같은 해 국내 미술 시장 규모는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은 341만 명을 달성하며 세계 톱5 박물관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이 650만 명을 넘어서며 루브르, 바티칸, 대영박물관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경제적 효과도 뚜렷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은 2468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1024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에서 관람객 350만 명을 모은 이건희 컬렉션은 해외 주요 미술관으로 무대를 넓혔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NMAA) 전시를 시작으로 2026년 3월부터는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9월부터는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런던 대영박물관 전시는 2027년 1월 10일까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등 삼성 일가는 오는 2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갈라 행사에 총출동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에는 이건희 컬렉션 2만3000여 점 가운데 문화재 총 297점과 걸작 24점 등 총 321점이 출품됐다. 백제 금동불상부터 현대까지 1500년을 아우르는 한국 미술의 정수가 담긴 전시다.



    외신은 이건희 컬렉션을 두고 K팝, K드라마, K영화에 이어 K미술이 세계 최정상 무대에 진입하는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삼성 일가가 미술품 2만3000점 이상을 국가에 기부한 것을 언급하며 “이건희 컬렉션은 일본 식민 지배, 6·25전쟁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연속적인 미술사적 서사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에 맞춰 대형 한국 미술전이 미국에 상륙했다”고 전했다.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K팝 등 대중문화가 한국의 역동성을 보여줬다면 이번 순회전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섬세함과 깊이를 만날 기회”라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에도시대 목판화가 서구에 일본 미학을 전파해 인상파와 아르누보에 영향을 준 것처럼 이건희 컬렉션을 필두로 한 K미술이 575억 달러(약 84조7000억원) 규모 글로벌 아트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세준 숙명여대 문화관광학부 교수는 “해외순회전은 한국의 미감을 백과사전식으로 보여줬다기보다는 이건희 컬렉션 자체가 가진 고유의 미를 잘 활용했다”며 “한국에 대해 전문가들만 알던 것들이 서구 대중에게도 알려져 한국 미술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외순회전은 출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약 2달간 열린 NMAA 순회전에는 총 4만여 명이 찾았다. 통상 NMAA에서 열리는 유사한 규모의 전시회보다 관람객 수가 2배가량 많았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던 회의에서 나온 ‘문화의 힘’
    특히 대영박물관과 NMAA는 이건희 회장이 생전 ‘문화적’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았던 곳이라 더 의미가 있다.

    그는 “모든 물건은 한데 모아야 힘이 난다. 철기, 자기, 사화 등 질 좋은 것들이 1억 점 이상 모여 있는 곳이 루브루 박물관이고 대영박물관이고 미국의 스미스소니언”이라며 “박물관 물건을 전 국민이 서너 점씩 나눠 가지고 있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 이것이 바로 복합, 집합, 입체화, 집중화의 개념이다”라고 했다. 그가 ‘신경영’을 선포했던 1993년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던진 문장이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며 산업의 혁신을 주문한 자리에서 문화자산에 대한 집중과 복합화의 철학을 함께 제시한 것이다.

    그는 30여 년 뒤 자신의 컬렉션으로 그 말을 증명했다. 1996년 신년사에서는 “21세기는 기업이 문화를 파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기기도 했다. 산업에서 일궈낸 ‘초격차’ 본능을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발휘한 것이다.

    1997년 에세이에서는 “(한국이) 역사에 대한 보존 의식도 희박하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박물관은 그 수와 소장품의 질에서 선진국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어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문화적인 소양이 자라나야 한다”며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 일가가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유일하게 남은 고려 ‘천수관음 불화’, ‘금동보살삼존상’ 등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유산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이유다.

    이건희 컬렉션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도 달라졌다. 삼성일가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등 한국 근대 대표작가 작품 1488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모네, 살바도르 달리,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등 한국에서 보기 힘든 해외 거장의 작품도 기증했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은 핵심 작가들의 작품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이건희 컬렉션 이후 아시아 주요 미술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첫 회고전이 올해 3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 컬렉터는 “지금 아트시장에서 가장 ‘핫’한 국가가 한국”이라며 “서울 강남권 화랑에서 외국인 작가가 전시하면 한국에서 개인전을 했다고 자랑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의미도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국가 문화유산을 지키고 미술 산업을 활성화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선순환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증여 이후 다른 소장자들의 기증 문의가 잇따르면서 ‘제2의 이건희’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건희 컬렉션은 그 뿌리부터 ‘국가적 보물’의 유출을 막고 지키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다”며 “단순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 미술품의 컬렉션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현대미술이 국가적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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