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반(反) 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군사작전까지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이란 정부에 대한 전복을 부추기면서 미국이 아예 이란의 정권교체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SNS에 올린 글에서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계속 시위하라. 여러분의 (정부) 기관을 점령하라”면서 시위를 독려했다. 그는 이 글에서 “살해하고 학대하는 이들의 이름을 남겨라. 그들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란 정부가) 시위대에 대한 무분별한 살해를 멈출 때까지 이란 당국자들과 모든 회의를 취소했다”면서 “도움의 손길이 가고 있다”고 밝혔다.
핀포인트 군사작전 암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저녁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정부에 대한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어떤 형태로 이란을 돕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많은 도움이 가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지원도 포함된다”고 답했다.그러면서 “이란을 그다지 많이 돕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이란의 핵 능력을 무력화시켰다”고 했다. 전면전보다는 이란 지도부에 대한 ‘핀포인트’식 소규모 군사작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는지 여부가 이런 개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정확한 수치를 알려준 사람은 없지만, 상당히 많은 숫자가 될 것 같고, 그것은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기반 단체인 인권운동가통신(HRANA)이 집계한 이란 시위 관련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약 2000명(군 및 경찰관 135명 포함)이다. 노르웨이 기반 단체인 이란인권(IHR)은 734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하면서 미확인 정보에 따르면 사망자가 6000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14일 중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대를 교수형에 처할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는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매우 강력한 조치’가 어디까지 포함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기는 것”이라면서 “나는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난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것이나 집권 1기 때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지도자였던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을 사살한 것 등을 언급했다.
정권교체 지원할까
이란의 레자 팔레비 전 왕세자는 미국에 이란 상황에 개입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이란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지만 결과적으로 1979년 이슬람혁명과 정교일체 지도부의 등장을 막지 못했다. 팔레비 왕조는 친미 성향이었으나 독재정권이었기는 마찬가지였다.이란 내에서는 팔레비 전 왕세자를 대안으로 지지하는 세력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광범위한 추대 분위기가 형성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미국이 즉각 팔레비 전 왕세자를 차기 리더십으로 교체할 경우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연일 대규모 친정부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는 대규모 폭력진압 후 공개적인 시위 형태로 표적이 되는 일을 피하는 중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정권교체 정책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리비아 등에서 실패했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면서 “표적에 대한 공격이 이란 내 민족주의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 내에서도 개입의 수위를 가늠하면서 고민하는 기류가 엿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정권이 평화적인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살해한다면 미국이 구하러 갈 것“이라면서 “우리는 장전을 마쳤고 언제든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사살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열흘 넘게 ‘개입하겠다’는 발언만을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핵심 지도부는 제거하되 외부에 협조하는 기존 세력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 ‘베네수엘라 모델’을 이란에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에 배치된 미군의 주요 자산도 즉각 대응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해군의 제럴드 R 포드 항공모함은 베네수엘라 작전 때문에 카리브해에 재배치됐다. 조지워싱턴호는 일본에 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호는 남중국해에 있다. 한 미국 관료는 WP에 “현재 행정부는 보복 위험 없이 완전한 물리적 공격을 수행할 만한 (중동)지역 내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란 핵시설을 폭격한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처럼 별도의 공격 자산을 활용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대응을 살피고 있다. 영국은 이란 당국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면서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디아라비아·오만·카타르 정부가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석유 시장을 흔들고 결국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면서 백악관을 설득하고 있다고 아랍 관료들을 인용해 전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란에 대한 파괴적 간섭을 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