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퀄컴이 CES 2026 기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밝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와의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칩 생산 협력을 최근 미국 투자은행 키방크(KeyBanc)와의 미팅에서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큰 손' 퀄컴의 위탁 물량이 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실적 개선세가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퀄컴이 삼성전자에 '삼성 파운드리 활용'을 지렛대로 삼아 '갤럭시에 퀄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채택 확대'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엑시노스 AP를 개발·판매하는 시스템LSI사업부엔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본지 1월 8일자 A1,5면 참조
퀄컴, 한경 인터뷰 이어 IB 미팅서도 협력 확인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퀄컴 경영진은 최근 키방크와 투자자 미팅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퀄컴 경영진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2㎚ 협력을 공식화했다. 현재 퀄컴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삼성전자의 신형 폴더블폰 갤럭시 플립8 탑재를 목표로, 스냅드래곤 AP의 삼성 2㎚ 파운드리 활용을 협의 중이다.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현장에서 한경 기자와 만나 "삼성전자와 가장 먼저 최신 2㎚ 공정을 활용한 위탁생산 논의를 시작했다"며 "조만간 상용화를 목표로 설계 작업도 끝낸 상태"라고 말했다. 퀄컴이 삼성 파운드리에 손을 내민 건 삼성 2㎚ 공정 경쟁력이 '활용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판단한 영향이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갤럭시 S26에 들어가는 엑시노스 2600 AP를 삼성 2㎚ 라인에서 생산하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 이점에 삼성은 가격 경쟁력 갖춰
퀄컴은 키방크와 미팅에서 삼성 파운드리사업부와 협업 이유에 대해 세 가지를 들었다. 우선 '공급망 다변화'다. 대만 TSM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이 큰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생산망 구축' 정책에 화답하기 위해 미국에 공급망을 확보할 필요성도 크다. 현재 퀄컴과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캠퍼스의 2㎚ 라인을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향후 수주 물량이 늘어날 경우 내년 이후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신공장을 활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두 번째 이유는 TSMC 대비 삼성 파운드리의 비용 경쟁력이다. 대만 현지 보도에 따르면 TSMC는 2026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15%씩 첨단 공정 가격을 올리겠다는 뜻을 고객사에 전달했다. 글로벌 고객사가 줄을 서 있다는 점을 이용해 수익 극대화에 나선 것이다. 현재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AP를 TSMC 최첨단공정에서 주로 만드는 퀄컴엔 작지 않은 부담 요인이다.
퀄컴의 고객인 스마트폰 기업은 최근 모바일 D램 가격 급등(매 분기 40~50%)에 따른 원가 상승으로 수익성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P 가격까지 급등하면 폰 가격을 크게 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글로벌 폰 소비 시장이 위축되고 퀄컴에도 부메랑이 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6년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2.1%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 파운드리는 TSMC 대비 경쟁력 있는 가격을 앞세워 수주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 관계자도 키방크 미팅에서 "삼성 파운드리가 TSMC 대비 비용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 파운드리 활용 통해 갤럭시용 납품 늘리겠다"
마지막으로 삼성전자가 퀄컴에 '삼성 파운드리 활용'을 은근히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파운드리는 포기할 수 없는 성장 동력이다.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하는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대가 열리면 파운드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하지만 현재 삼성 파운드리는 고객이 많지 않아 영업적자를 기록 중인 상황이다. 올해부터 테슬라와 함께 퀄컴이 최첨단 공정의 주요 고객사로 합류하면 실적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퀄컴도 이 점을 숨기지 않았다. 퀄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자사 파운드리 기반 반도체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 점을 활용하면 AP 납품을 늘릴 수 있는 잠재적인 이점이 있다"며 "75%인 갤럭시 S26의 AP 점유율을 갤럭시 S27에선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 달 출시 예정인 갤럭시 S26엔 엑시노스 부분(25%) 탑재를 허용했지만, 내년 나오는 갤럭시 S27에선 갤럭시 S25처럼 100%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간접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파운드리는 좋은데...시스템LSI는 경쟁력 입증해야
삼성전자 파운드리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소식이다. 퀄컴 같은 대형 고객사 물량을 받아 최첨단 공정에서 칩을 생산하면 수율도 올릴 수 있고 트랙레코드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지렛대 삼아 퀄컴 물량을 추가로 수주하거나, 다른 외부 고객사 확보에 나설 수 있다.엑시노스 AP를 설계하는 시스템LSI사업부 입장에선 '퀄컴과 같은 조건에서의 경쟁'이란 도전적인 환경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시스템LSI사업부에선 최근 몇 년간 엑시노스가 고전한 이유 중 하나로 자사 파운드리를 꼽는 목소리가 나왔다. 삼성 파운드리 경쟁력이 일정 수준 회복됐고, 퀄컴이 다시 삼성 파운드리 공정의 활용에 나선만큼, 앞으로는 동일한 환경에서 나오는 제품 성능으로 진검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