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대박이다.” 로또 같은 말에 다들 코웃음 쳤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어서 그랬다. 그 한 해 전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고, 개성공단은 셔터를 내렸다. 교류조차 끊은 ‘강 대 강’ 대결 국면에서 물정 없는 얘기였다.분단 81년. 남북은 모든 면에서 극단으로 달라졌다. 언어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이 개방화, 세계화로 기축 언어의 침습에 시달리는 동안 북한은 고립주의 전략을 고수했다. 물론 러시아 등 주변국 영향을 받은 시기도 있었다.
한국은 북한 언어를 방언으로 취급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북한어’로 분류한다. 북한도 매한가지다. 평양 기반의 표준어를 ‘문화어’로 부르며, 남한 언어를 ‘남조선어’로 처리한다. 한국어에 표준어가 두 개 있는 셈이다. 차이는 오해를 부르기 십상이다.
표준어와 문화어 이질화 심각
남한 사람들은 문화어를 거의 모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준하는 북한 사전은 <조선말대사전>인데, 차이가 엄청나다. 남한의 ‘오징어’는 북한에 가면 ‘낙지’로 변한다. 정작 낙지는 ‘문어새끼’로 쓴다. 주꾸미의 북한말은 ‘직검발’이다. ‘상추’는 ‘부루’고, ‘콩나물’은 ‘콩싹’이다.외래어 차이는 더 극명하다. ‘아이스크림’을 북한에서 ‘얼음보숭이’로 쓴다고 해 웃음거리가 됐다. 브래지어→가슴띠, 원피스→나리옷, 도넛→가락지빵, 햄버거→고기겹빵, 싱크대→가시대, 주스→단물 등 촌스럽게 느낄지 모르지만 고유어로 다듬었다. 우리보다 철저하다. 다만 얼음보숭이는 사람들 말맛을 이기지 못했다. ‘에스키모’라는 브랜드가 보통명사화하며 자리 잡았고, 최근엔 아이스크림이 많이 쓰인다. ‘자장면’처럼 언어 정책이 ‘인민’에게 저항받은 사례다.
표기법도 낯설다. 백신→왁찐, 카페→까페, 마라톤→마라손, 달러→딸라 등 북한은 된소리를 적극 허용해 원음에 더 가깝게 적는다.
언어 통일은 교류만이 해법
까마귀가 오작교를 놨을까.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이 머리를 맞댔다. 2004년 ‘겨레말큰사전’ 사업을 시작했다. 표준어와 문화어를 아우른 한민족 통일 사전을 만들자는 계획은 잘나갔다. 19차례 만남을 이어가며 공정률 50%를 넘겼다. 하지만 이내 암초에 부딪혔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이후 나온 5·24 조치로 멈췄다. 안타깝게도 한두 번 더 만나다 2015년을 끝으로 공동 편찬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통일’이란 단어는 비현실적이다. ‘6·15 남북 공동선언’ ‘9·19 군사 합의’처럼 구체적이지 않다. 꿈의 언어다. 인간은 상상하고 꿈꾸고 그리고 현재화한다. 자율주행차가 그렇게 나오고, 휴머노이드도 마찬가지다. 우린 통일을 꿈꾼다. 꿈꾸지 않는 자에게 현실은 없다.
현실은 그러나 엄혹하다. 김정은이 2023년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다. 핵은 머리 위에 있다. 짝사랑은 언제나 서럽다. 뼈시리다.
다행히 불씨는 살아 있다. 북한 MZ세대에서 남한 언어가 유행한다고 한다. ‘동무’ 대신 ‘오빠’ ‘자기야’로 애정하고, ‘남친’ ‘여친’ ‘아줌마’ ‘아저씨’도 일상으로 쓴다. 겨레말큰사전은 미완이지만 생활언어가 연어처럼 남북을 거슬러 오른다. 언젠가 평양 여명거리 까페에서 ‘아아’를 주문하는 꿈을 꿔본다. 새해 벽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