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의료법인 대표나 이사로 병원 운영에 참여했다고 해서 곧바로 의료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로 여러 의료기관 운영에 관여한 경우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첫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치과의사 이모씨 사건에서 원심 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이씨는 의료법인 대표로 A치과병원을 운영하면서 별도 사단법인 명의를 이용해 여러 의원과 치과를 추가로 개설·운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씨가 각 병원의 자금 조달과 인력 채용, 급여 결정 등에 관여하며 사실상 여러 의료기관을 지배·관리했다고 봤다. 또 상가 내 특정 호실이 약국을 독점 운영할 수 있는 것처럼 속여 임차인들로부터 보증금과 권리금 등 약 6억원을 가로채고, 의료법 위반 사실을 숨긴 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해 약 3억6000만원을 받아낸 혐의도 적용했다.
1심은 이씨에게 특경법상 사기와 의료법 위반,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을 적용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임차인들을 속여 거액을 편취하고 의료법인과 친인척 명의를 이용해 여러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했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도 의료기관의 자금과 인력, 운영 성과를 사실상 이씨가 통제했다며 유지 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 다르게 봤다. 이씨가 의료법상 ‘의료인의 1인 1기관 개설·운영’ 원칙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법은 의료인과 달리 의료법인에 대해서는 병원 수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의료법인에 실제 재산 출연이 없거나 법인을 외형만 갖춘 탈법적 수단으로 악용한 경우 등 추가 사정에 대한 심리가 필요한데도 원심은 이에 대한 충분한 판단이 없었다”고 판시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