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어 ‘이모’의 쓰임새 확장 주목
신문윤리위원회는 이후 이 표현을 쓴 언론사 11곳에 ‘주의’ 조치했다. ‘필리핀 이모’가 외국인 여성 근로자를 비하 또는 차별하는 표현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비슷한 시기에 한 여당 의원과 대통령실 비서관이 휴대전화로 인사 청탁을 주고받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혔다. 여기서는 “훈식이 형, 현지 누나”가 튀어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각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제1부속실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어쨌거나 세간에 파장을 일으킨 이모와 형, 누나 같은 말을 ‘친족어’라고 한다. ‘친족어’란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지는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어휘를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같은 낱말이 친족어다. 이 중 ‘이모’는 친족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널리 쓰인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앞서 살핀 ‘필리핀 이모’가 그 예다. 우리말에는 식당 같은 데서 직원을 부르는 마땅한 호칭어가 따로 없다. 그러다 보니 예전부터 “이모~” 하고 불렀다. 여러 비판과 논란이 있지만 “사장님”만큼이나 흔하게, 널리 부담감 없이 쓸 수 있다는 게 이 말의 장점이다.
‘이모(姨母)’는 본래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남남끼리 정답게 부르는 말로도 ‘이모’를 사용했다. 그만큼 이 말에는 비하나 차별보다는 외려 친근감이 담겨 있다. ‘이모’가 애초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에도 서비스업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마법의 부름말이 된 데에는 이런 언어적 배경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지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이 용법을 풀이에 올렸다. 즉 이모가 어머니의 자매를 가리키는 말에서 ‘남남끼리 정답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 쓰임새가 확장된 것이다.
남용하면 자칫 공적 의식 무너뜨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처럼 비교적 현실 어법을 좇아 풀이에 반영하는 것을 기술적(記述的) 사전 편찬이라고 한다. 전통적 언어 규범에는 어긋나지만 언중이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입말(구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표준국어대사전>은 규범적 쓰임새를 기준으로 사전을 엮었다. 두 사전의 편찬 방식 차이는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현실 어법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이모’ 호칭에 대한 용법의 타당성이 갈리기 때문이다. 표준화법(국립국어원의 ‘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친족어 의미를 벗어난 사회적 용법으로서 ‘이모’ 호칭은 허용되지 않는다. 좋은 표현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관점에서는 이런 용법이 인정된다. 언중이 사용하는 말을 곧 문법으로 보기 때문이다.사회적 부름말로 ‘형’도 일찍부터 유용하게 확장돼 쓰였다. ‘형’은 본래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남자들 중 손윗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남남끼리도 나이가 적은 남자가 나이 많은 남자를 부를 때 흔히 쓰이며, 이때는 ‘친밀함’이 전제된다. 남자 형제 관계에서 흔히 사용하지만, 대학에서 여자 후배가 남자인 선배를 부르는 호칭으로도 통용된다. ‘누나’ 역시 본래는 남자가 손위 여성을 부르는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남남끼리도 정답게 부르는 표현으로 확장되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형’과 ‘누나’의 사회적 쓰임새는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의 말이라는 점이다. 공적 언어가 아닌 만큼 공직에 몸담은 사람 사이에 공적 용무로 나눌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훈식이 형, 현지 누나’는 사적 언어에 포획된 공적 의식 사례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