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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없는 무대, 더 또렷해진 발레 '더 나잇 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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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없는 무대, 더 또렷해진 발레 '더 나잇 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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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 공연은 종종 서사 없는 하이라이트의 연속으로 소비된다. 그럼에도 지난 3일과 4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더 나잇 인 서울'(이프로덕션·신성엔터테인먼트 공동 주최)은 명장면의 나열 속 서로 다른 발레의 전통과 미학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을 만들어냈다. 러시아, 프랑스, 미국, 덴마크에서 각자 이어온 발레의 전통이 동시대에 어떻게 공존하는지 보여준 무대였다.




    피날레를 장식한 건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퍼스트 솔리스트인 메이 나가히사와 전민철이었다. 공연 마지막 날인 4일, 두 사람은 레오니드 라브롭스키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2인무로 무대에 섰다. 러시아 무대에서는 동양인 무용수들끼리 주역 연기를 펼치기 좀처럼 어려운 만큼 이 무대는 희소성이 충분했다. 특히 마린스키 발레단이 선보여왔던 라브롭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전 발레의 형식과 음악적 구조 속에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두는 프로덕션이다. 게다가 메이 나가히사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줄리엣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아온 무용수. 짧은 갈라였지만 나가히사는 사랑의 설렘과 폭발하는 감정을 보여주며 줄리엣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연기했다. 나가히사의 줄리엣은 팔과 상체의 선이 흐트러짐이 없었고 작은 동작에서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의도했던 듯한 음악적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했다.




    전민철은 나가히사를 서포트하며 언젠가 데뷔할 전막 무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호흡은 과장보다는 편안함을 택해 무대의 밀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 듯 보였다.



    이번 갈라의 미덕이 특정 무용수에게만 머문 것은 아니다. 양일 공연의 1부를 장식했던 덴마크 왕립발레단의 무대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부르농빌 발레를 선보이며 갈라 전체에 또 다른 결을 더했다. 부르농빌 발레는 19세기 덴마크에서 확립한 양식으로 빠르고 촘촘한 스텝, 높은 점프에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착지가 특징이다. 화려한 회전이나 고난도 기술의 과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무용수들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러시아 발레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프랑스 발레만큼 기품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잘못 추면 단조롭고 잘 추면 눈을 뗄 수 없는 스타일이 부르농빌 발레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덴마크 왕립발레단이 보여준 '라 실피드'가 꼭 그랬다. 공기의 요정을 연기하는 여성 무용수보다 사랑의 환희에 차 중심 축을 이리저리 옮기며 경쾌하게 춤을 추는 남성 무용수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예기치 못한 변수도 있었다.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제 1무용수 강호현은 공연 직전 파트너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전민철과 함께 '들리브 스위트'라는 레퍼토리를 급히 구성해 무대에 올렸다. 준비 과정의 부담이 느껴질법한 상황이었겠지만 음악을 타고 흐르는 몸의 여유는 오히려 이 선택이 임기응변이었다는 걸 잊게 만들었다. 이밖에도 아메리칸발레씨어터는 '백조의 호수'중 흑조 파드되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및 '돈키호테'의 2인무 등 고전 중의 고전 작품을 보여주면서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다만 무대 연출이 단조로워도 너무 단조로웠던 게 흠.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빛깔의 배경은 같은 계열 컬러의 의상에 가려진 무용수들의 동작을 감상하는 데 아쉬움을 남겼다. 아무리 갈라라지만, '휑한 무대 위쪽 간단한 샹들리에라도 달아줬다면'을 바란 건 처음이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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