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사의 한 시대를 이끌어 온 배우 안성기가 세상을 떠나자, 영화계와 문화예술계 전반이 깊은 애도에 잠겼다. 평생 스크린을 지키며 관객과 호흡해 온 국민배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동료와 후배,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다. 이날 장례식장이 열리자마자 영화인과 문화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빈소 안팎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국영화배우협회 관계자는 이날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전했다. 그는 "유가족에게서 전해 들은 바로는 병원에 계실 당시 깊이 잠든 것처럼 매우 평온했다고 한다"며 "큰 고통 없이 조용히 영면에 드신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고인과 중학생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가수 조용필도 빈소를 찾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조용필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며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회복된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투어 일정 중이라 몸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있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조용필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본인이 직접 '용필아 나 다 나았어'라고 말해줘서 안심했었다"며 "다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같은 반에서 옆자리에 앉아 늘 함께 다녔고, 만나면 배우와 가수를 떠나 장난을 주고받던 사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늘에 가서도 아쉬움 없이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하시길 바란다. 성기야 또 만나자"고 고인을 배웅했다.

배우 박상원은 조문객 가운데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인사 중 한 명이다. 그는 "국민과 세계 영화인들이 사랑했던 안성기 배우가 긴 여정을 마치고 영면에 들었다"며 "너무 슬프지만,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연기를 이어가고 계실 것이라 믿는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도 이른 시간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정재는 고인의 아내 요청에 따라 운구를 맡아 마지막 길을 함께할 예정이다.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다섯 살에 데뷔하며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1959년 출연한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아역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학업에 전념하기 전까지 약 10년간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성인이 된 그는 '병사와 아가씨들'을 시작으로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을 통해 본격적인 주연 배우로 자리 잡았다. 이후 '만다라',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을 통해 198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에는 '남부군', '하얀전쟁', '투캅스', '태백산맥',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흥행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들로 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대 이후에도 '무사', '실미도', '라디오스타' 등에서 영화계 맏형으로서 존재감을 이어갔으며, 마지막 출연작은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였다.
안성기는 약 69년에 걸쳐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의 중심을 지켜왔다. 대종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40여 차례 연기상을 받았고, 은관문화훈장을 비롯한 각종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사회적 책임도 꾸준히 실천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운구는 이병헌, 이정재, 정우성, 박철민 등이 맡고, 조사는 배창호 감독과 정우성이 낭독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