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클래식 음악계가 ‘세계 3대 악단 대전(大戰)’으로 들썩였다면, 올해 화두는 ‘다양성’이다. 독일 영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문화와 전통이 녹아든 명문 악단 20여 곳이 한국을 찾는다.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임윤찬과 조성진의 리사이틀 등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공연도 연달아 펼쳐진다.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1~2월 국내 청중과 만난다. 1548년 창단된 이 악단의 최초 수석객원지휘자인 정명훈이 포디엄에 오르고,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자로 나선다. 임윤찬은 11월 ‘미국 5대 오케스트라’(빅 파이브)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의 협연자로도 무대에 오른다. 2022년 밴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의 결선 연주를 듣고 눈물을 훔친 마에스트라 마린 올솝이 지휘를 맡는다. 임윤찬은 5월 리사이틀 ‘판타지’, 6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내한 공연으로도 청중을 만난다.
영국의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3월에 한국을 찾는다. 세계적 음악 축제 ‘BBC 프롬스’의 메인 악단인 BBC 심포니가 내한 공연을 여는 건 2013년 이후 13년 만이다. 수석지휘자 사카리 오라모가 공연을 이끌고,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협연자로 나선다. 5월 5~6일 열리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도 클래식 애호가라면 놓칠 수 없는 공연이다. ‘젊은 지휘 거장’ 라하브 샤니,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호흡을 만나볼 수 있다. 조성진은 7월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다이신 가시모토 등과의 실내악 콘서트, 리사이틀도 선보인다.
2026년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전막 초연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국립오페라단이 10~11월 작품의 1부인 ‘라인의 황금’을 선보인다. 10월엔 최정상급 악단 빈 필하모닉의 내한도 예정돼 있다. 11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공연도 눈여겨볼 만하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이어 이 악단의 수장을 맡은 세계적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2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도 국내에서 들어볼 수 있다. 그는 1957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노의 황제’ 마우리치오 폴리니(2위)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고, 196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명피아니스트다. 아르헤리치는 11월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협연할 예정이다.
시간을 사유하는 미술전시…거장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미술계는 축적의 시간에 가깝다. 블록버스터 전시가 폭발적으로 쏟아지기보다 그간 늘어놓았던 여러 미술사적 맥락을 갈무리하는 해가 될 전망이다.이름값 높은 작가의 전시 하면 떠오르는 곳은 리움과 호암미술관이다. 리움은 ‘미술 올림픽’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달군 티노 세갈과 구정아의 개인전을 각각 2월과 9월에 선보인다. 세갈은 201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구정아는 2년 전 한국관 단독 작가로 선정돼 글로벌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호암은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의 70년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첫 대규모 회고전을 3월에 연다. 호암이 한국 여성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론 뮤익 개인전으로 화제를 낳은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도 대형 전시를 연다. 3월에 서울관에서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아시아 첫 회고전을, 8월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시간과 사유의 무게로 압도하는 전시도 한국을 찾는다. 5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모더니즘의 탄생: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가제)가 대표적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1890년 7월께 그린 ‘오베르의 우아즈 강’ 등 미국 디트로이트미술관(DIA)이 소장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걸작 52점을 조명한다.
9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스페인 미술 500년: 벨라스케스부터 소로야까지’(가제)는 르네상스부터 모더니즘까지 스페인 회화의 역사를 망라하는 자리다. 한국과 스페인 수교 76주년을 기념해 국내 처음으로 미국 뉴욕 히스패닉소사이어티박물관(HSML)의 컬렉션을 선보인다. 엘 그레코, 호아킨 소로야 등 스페인 미술을 이끈 거장의 작품 100여 점을 원화로 볼 수 있다.
갤러리 전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라리오갤러리는 2월 한국 현대사진과 여성미술 발전에 족적을 남기고 지난해 별세한 박영숙 사진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통해 그의 예술 여정을 되짚어본다. 국제갤러리는 6월 한국 현대사진 거장 구본창이 기획을 맡아 한국 사진의 현주소를 짚는 단체전을 연다.
김선정 예술감독이 이끄는 아트선재센터는 3월부터 6월까지 논쟁적인 장소로 탈바꿈한다. 대규모 퀴어 그룹전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개최하면서다. 김아영, 마크 브래드퍼드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이 21세기 현대미술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퀴어 미술의 다층적인 지형을 조망한다.
감성 채울 뮤지컬·연극·발레…명작부터 신작까지 총출동
2026년 뮤지컬계에는 잊고 있던 추억 속 멜로디를 소환하는 브로드웨이 대작이 찾아온다. 국내에서 주목받는 젊은 창작진의 신작 연극도 쏟아질 예정이다.연초 기대작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무대로 옮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1월 7일~3월 22일)이다. 히사이시 조의 원작 음악을 11인조 오케스트라로 연주하고 퍼핏(인형)과 영상, 조명 등 다양한 효과를 동원해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여름 시즌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두 편이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난다. 미국 R&B 가수 얼리샤 키스의 노래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헬스키친’(7월)과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원작으로 한 ‘프로즌’(8월)이 나란히 초연한다. 12월에는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 등 뮤지컬계의 고전이 돌아온다.
연극계에선 서울시극단 작품 두 편이 기대를 모은다. 빅데이터 시대의 정보 권력과 여론 조작을 다룬 프랑스 화제작 ‘빅 마더’(3월 30일~4월 26일)와 한국 사회의 내밀한 욕망을 해부하는 ‘아.파.트.’(10월 24일~11월 14일)다. 두 작품 모두 지난해 11월 역대 최연소로 서울시극단 신임 단장에 부임한 이준우(40)가 연출을 맡는다.
5월에는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 두 작품이 맞붙는다. LG아트센터서울과 공동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의 손상규 연출이 재해석한 ‘바냐 삼촌’(5월 7~31일)에 이어 국립극단과 조광화 연출의 ‘반야 아재’(5월 22~31일)가 무대에 오른다.
모던발레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도 눈에 띈다. 서울시발레단의 ‘In the Bamboo Forest’(5월 15~17일)는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음악가 박다울과 안무가 강효형이 협업한 작품으로, 대나무의 생명력과 정화의 이미지를 현대발레의 언어로 풀어낸다. 세계적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의 ‘한여름 밤의 꿈’(6월 12~14일)은 건초 더미 위에서 펼쳐지는 폭발적인 군무가 백미로 꼽힌다.
김수현/유승목/허세민 기자 ksoohyu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