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샤넬이 루이비통을 제치고 패션 부문 브랜드 가치 최정상에 섰다. 시계의 대명사 롤렉스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톱5에 진입했다. 반면, 한때 MZ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구찌는 가치가 4분의 1이나 증발했다. 경기 침체 시기일수록 가격이 비싸도 보다 확실한 브랜드와 환금성 높은 상품에 지갑을 여는 ‘럭셔리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간) 영국의 브랜드 평가 컨설팅 업체인 브랜드 파이낸스가 발표한 ‘2025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가치 50’ 보고서에 따르면, 샤넬은 전년 대비 브랜드 가치가 45%나 급증한 379억 달러(약 53조원)에 이르렀다. 부동의 패션 1위였던 루이비통(329억 달러)을 3위로 밀어내고 전체 2위, 패션 부문 1위를 꿰찼다.

패션 업계에선 이를 두고 ‘초고가 전략의 승리’란 평가를 내놨다. 샤넬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차례 가격을 인상하며 ‘배짱 영업’을 이어갔음에도, 오히려 오픈런이 지속되는 등 더 큰 인기를 누렸다. 브랜드 파이낸스는 “샤넬이 단순한 패션을 넘어선 헤리티지(유산)를 파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심리적 가격 저항선이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진단했다.
반면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급성장했던 구찌의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24% 하락한 114억 달러에 그치며 순위가 기존 5위에서 9위로 미끄러졌다. 명품 소비의 큰 손이었던 중국의 경기 둔화와 젊은 층의 구매력 감소 영향이 컸다.

시계와 뷰티 부문 브랜드의 약진도 주목된다. 롤렉스의 브랜드 가치는 36% 상승하며 5위로 뛰어올랐고, LVMH 그룹 산하의 뷰티 브랜드 겔랑은 23% 성장하며 2021년 이후 처음으로 ‘톱10’에 복귀했다. 대부분이 제품이 수 천만 원을 호가하는 롤렉스는 단순한 명품을 넘어 환금성 높은 안전 자산으로 인식돼 수요가 크게 늘었다. 겔랑 등 뷰티 브랜드의 경우 비교적 적은 돈으로 명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주는 ‘스몰 럭셔리’ 트렌드의 수혜를 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전체 1위는 독일의 포르쉐가 차지했다. 포르쉐의 브랜드 가치는 411억 달러(약 57조원)를 기록하며 8년 연속 왕좌를 수성했다. 국가별로는 프랑스의 독주가 이어졌다. 톱10 브랜드 중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디올, 까르띠에, 겔랑 등 무려 6개나 이름을 올렸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