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활동에 나선 20~30대 청년의 68%는 ‘65세 정년 연장 논의에 청년층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와 정치권이 법률로 규제하려는 정년 연장 방식과 관련해서도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20~30대도 정년 연장에 찬성한다”는 일부 주장과 달리 ‘예비 직장인’이 정년 연장에 부정적인 건 역대 최악의 취업난과 함께 기득권(취업자)에 편중된 노동정책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 “생산성 개선이 중요”
한국경제신문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5~18일 20~30대 미취업 청년 101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5세 법정 정년 연장 움직임과 관련해 청년층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67.8%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반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32.2%에 그쳤다.미취업자들은 정년 연장 논의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생산성 개선 및 청년 일자리 확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33.0%)을 가장 많이 냈다. ‘기업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추진돼야 한다’(28.1%)가 뒤를 이었고 ‘성과에 기반한 탄력적인 임금체계로 개선’(22.0%)을 고른 응답자도 많았다. 60세 이상 근로자의 정년을 모두 연장해야 한다는 답은 13.2%였다.
◇ 좁아지는 취업문에 ‘불안’
이번 설문 결과는 ‘정년 연장에 찬성하는 20대 비중이 70%가 넘는다’는 일부 여론 조사와는 결이 달랐다. 정부와 일부 정치권은 이런 설문 결과를 토대로 “법정 정년을 65세로 빠르게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구직 청년들의 생각은 판이하게 달랐다. ‘정년이 연장되면 안 그래도 좁은 취업문이 아예 막힐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실제 청년 취업난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349만1000명으로 지난해 11월(366만8000명) 대비 4.8% 감소했다. 청년 인구 가운데 실제 일하는 사람이 얼마인지를 보여주는 ‘청년층 고용률’은 44.3%로, 지난해 4월 이후 19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런 통계는 이번 설문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응답자의 96.6%는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청년 취업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로 ‘노동 경직성’을 꼽았다. 32.5%가 ‘노동정책이 고용 안정에 방점을 둔 탓에 취업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지적했다. 한 번 정직원이 되면 성과가 나빠도 쉽게 해고되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용 안전성이 청년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의미다.
식어가는 대한민국 성장 엔진에 대한 우려도 컸다. 응답자의 28.6%는 취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저하’를 꼽았다. ‘인공지능(AI) 도입과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22.8%)와 ‘양대 노총의 집단 이기주의’(13.0%)가 뒤를 이었다.
기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임금 체계로 연봉제를 고른 응답자가 42%로 가장 많았다. 엔지니어, 경영지원 등 맡은 직무에 따라 임금 체계를 달리하는 직무급제도(34.7%)를 꼽은 이도 많았다. 호봉제를 고른 응답자는 22.5%에 그쳤다.
◇ 도전보다 안정 선호
설문에선 도전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요즘 청년들의 경향도 확인됐다. ‘취업 후 원하는 직장내 경로’를 묻는 항목에 ‘정년까지 근무’(64.6%)와 ‘투자 성공 후 빠른 은퇴’(22%)가 ‘임원 승진’(6.9%)과 ‘해외 기업으로 이직’(6.5%)을 압도했다. 직장을 선택할 때 중요 요소로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을 꼽은 응답자(52.5%)가 ‘연봉’(36.2%)과 자아실현(6.4%)보다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가고 싶은 직장 유형으론 탄탄한 중견·중소기업(43.0%)과 공기업(25.5%)이 대기업(22.6%)보다 많았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기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오래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도입의 10년 후 노동시장 영향’에 관한 질문엔 63.8%가 ‘일자리가 줄고 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수/김채연/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