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전격 사퇴했다.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특혜 의혹과 보좌진 ‘갑질’ 논란이 잇따르며 정치적 부담이 커진 데 따른 결정이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헌금이 오간 정황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자 원내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다.
◇공천헌금 묵인 의혹이 결정타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연일 계속되는 의혹 제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한 제가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민께 깊이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처신이 있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제 부족함에 있다”며 “민주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원내대표는 임기 1년의 선출직이다. 이재명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 원내대표는 당내 친이재명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올 6월 집권 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취임 약 200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김 원내대표 관련 논란은 원내대표 선거 때 처음 불거졌다. 김 원내대표 부인이 2016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게 아들 취업을 청탁했다는 내용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당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부인했다. 이달 들어 그를 둘러싼 의혹이 잇달아 제기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일 때 대한항공 호텔 숙박권을 무상 이용했다는 의혹, 김 원내대표 가족이 대한항공을 통해 의전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등이 이어졌다. 그의 배우자가 과거 지역구 의회 부의장의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지난 29일 공천헌금 관련 녹취가 공개된 게 결정타였다는 분석이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에서 김경 서울시의원 후보에게서 1억원을 받았다는 취지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가 공개됐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였고 강 의원이 이를 김 원내대표와 상의하는 녹취 파일이 공개됐다. 당내에선 공천헌금이 오간 정황을 인지하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치권에선 김 원내대표와 전직 보좌진의 갈등이 이번 사태의 배경 중 하나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대부분 지난해 12월 해고한 전직 보좌관 6명의 제보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보좌진과의 갈등이 발단
애초 여권에서는 김 원내대표가 이날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정권 초 여당 원내대표가 중도 퇴진하면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갈수록 여론이 나빠지고, 자칫 더 버텼다가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김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로 방향을 돌렸다는 분석이 많다. 청와대도 전날 김 원내대표 논란에 대해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정치권에선 김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로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당 윤리감찰단에 강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진상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강 의원은 “공천을 약속하고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지만 국민의힘 등은 강 의원과 김 원내대표가 의원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민주당은 차기 원내대표를 뽑기 위한 선거 절차에 들어간다. 잔여 임기는 5개월로 짧지만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 관여할 수 있는 핵심 자리인 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 대통령 집권 초반이어서 당청 소통이 원활한 인사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정 백혜련 한병도 의원 등 3선 중진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원내대표 보궐선거는 다음달 11일 최고위원 보궐선거와 함께 치른다. 선출될 원내대표는 내년 6월까지 김 원내대표의 잔여 임기 5개월을 이어받는다.
최형창/이시은 기자 calli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