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한 행위도 괴롭힘이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됩니다. 조직도상 명확히 아래 직급에 있는 직원이 상급자를 괴롭혔다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 인사담당자로서는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최근 법원 판결은 이러한 고민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병원 내부 식당에서 근무하던 영양사 A는 근속 4년 차 직원이었고, 새로 영양실장으로 입사한 G는 입사 3개월 차로 A의 상급자였습니다. 다만 A는 G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았고, 병원 근속기간 역시 약 4년 가량 길어 조직 내에서는 이른바 ‘먼저 온 나이 많은 선배’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A의 언행이 점차 도를 넘었다는 점입니다. A는 상급자인 G의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은 물론, 폭언과 험담으로 G를 압박했습니다. "영양사가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식단표에 원산지 표시도 하나 똑바로 못하면서!"라며 G의 업무 능력을 공개적으로 비하했고, "싸가지가 없어. 내가 니랑 열네 살이나 차이 나는데, 내가 4년 동안 먼저 있었는데, 지가 들어와 가지고 어디서 그리 못돼 처먹은 행동을 하노!"라는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너는 4년 동안 있었던 사람한테, 지가 남의 밥그릇 뺏으러 온 주제에, 나눠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라며 G의 입사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한 G는 A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고, 조사 결과 A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인정되어 징계를 받았습니다.
<i># 직장 내 괴롭힘의 성립 요건,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i>
A는 징계에 불복해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은 G의 하급자였고, G의 업무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직장 내 괴롭힘에서 말하는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급자인 A가 상급자 G에게 한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 것일까요?
<i># 법원이 본 ‘관계의 우위’</i>
법원의 판단은 분명했습니다. 법원은 G가 A의 상급자이기는 하나, A는 약 4년간 근속해 온 직원이고 G는 입사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점, A가 근속연수와 나이의 우위를 이용해 G에게 반말을 하거나 업무 역량을 지적·비하하는 발언을 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서 정한 직장에서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전지방법원 2024. 10. 31. 선고 2024구합336 판결, 대전고등법원 2025. 5. 15. 선고 2024누13079 판결)
즉, 단순히 직급상 지휘·명령 관계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조직 내에서 실제로 형성된 힘의 관계를 통해 우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i># ‘관계의 우위’는 어디까지 포함될까</i>
직장 내 괴롭힘은 흔히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가하는 문제로 인식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 내 직위·직급 체계상 아래에 있더라도 '관계의 우위'는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관계의 우위란 '상대방이 저항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개연성이 높은 상태로서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관계'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개인 대 집단의 관계, 근속연수, 연령, 고용형태, 학벌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i># 보이지 않는 권력지도까지 살펴야</i>
직장 내 괴롭힘에서 말하는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는 단순한 직급이나 직책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나이, 근속연수, 학벌, 고용 형태, 조직 내 비공식적인 영향력 등 현실적인 힘의 구조 전체가 판단 대상이 됩니다.
우리나라 조직문화에서는 나이와 입사 선후배 관계가 공식적인 직급 관계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입 팀장보다 나이 많은 팀원들이 팀장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 경력직으로 입사한 관리자가 기존 직원들로부터 텃세를 받는 상황 등은 이제 단순한 조직 내 갈등이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다뤄질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이 위에서 아래로만 발생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 조직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힘의 관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인사담당자라면 이제 조직도뿐 아니라 조직 내 보이지 않는 권력 지도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윤혜인 행복한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