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30일 15:0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경찰이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매각 입찰 과정에서 흥국생명이 제기한 부정거래 의혹 고소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한다. 향후 위법 사항이 밝혀질 경우 매각 진행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입찰 뒤 가격·조건을 조정하는 절차 자체는 업계 관행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는 오는 31일 고소인 조사를 시작으로 흥국생명이 제출한 고소장 내용과 매각 절차 전반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흥국생명은 이지스운용 최대주주인 손모 씨와 주주대표 김모 씨, 공동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 한국 IB 부문 김모 대표 등 5명을 공정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의 핵심은 본입찰 이후 개별협상이 사전에 고지된 룰 안에서 이뤄졌는지, 그리고 최고가 입찰가가 경쟁자에게 흘러 들어가 가격 협상의 지렛대로 쓰였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흥국생명은 지난 11월 11일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을 써내 최고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사모펀드 힐하우스와 한화생명은 9000억원대 중반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흥국생명은 고소장에서 매도인 측과 주간사가 본입찰을 앞두고 '프로그레시브 딜'(본입찰 마감 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후보에게 기회를 주는 사실상의 경매 호가 방식)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설명했고, 흥국생명은 이를 전제로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 냈다는 입장을 폈다.
그러나 본입찰 이후 매도인·주간사가 힐하우스 측과 개별협상을 진행하면서 흥국생명의 가격이 사실상 기준점으로 활용됐고, 결과적으로 흥국생명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정당한 기회를 잃었다는 게 흥국생명 측 주장이다.
흥국생명이 고소장에 적시한 혐의는 크게 두 갈래다. 먼저 형법 제315조 입찰방해 적용 주장이다. 흥국생명은 위계·위력 기타 방법으로 입찰의 공정을 해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조항을 근거로 들며, "입찰의 공정은 결과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자유경쟁을 통한 적정 가격 형성이 작동할 상태가 훼손됐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고소장에는 △모든 참가자가 동일한 전제조건에서 가격을 제시해야 하고 △제시된 입찰가격이 다른 참가자에게 유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깨졌다는 취지도 담겼다.
둘째는 자본시장법 제178조상 사기적 부정거래 주장이다. 흥국생명은 매각 측이 오직 매매가격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부정한 수단·계획·기교를 사용해 거래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적시했다. 흥국생명은 이를 단순한 절차상 분쟁이 아니라, 가격 형성 과정을 왜곡해 거래 질서를 교란한 사안으로 보고 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수사 관건은 증거의 형태다. 본입찰이 이메일로 접수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수사기관이 이메일 제출·수신 기록과 열람·전달 경로, 포워딩 여부 및 내부 공유 범위, 본입찰 이후 협상 과정의 커뮤니케이션을 확보하면 입찰가 유출 여부와 이른바 프로그레시브 딜 해당 여부를 가를 단서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흥국생명 측은 본입찰 전후로 '추가 가격 경쟁은 없다'는 취지의 설명이 반복 확인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반론도 존재한다. 거래 실무에 밝은 IB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우선협상자를 정한 뒤 가격·조건을 조정하는 과정은 M&A에서 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핵심은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는 설명이 어느 수준의 약속이었는지, 프로세스 레터 등 절차 문서 유무와 개별협상이 있었다 하더라도 경쟁 질서를 깨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이지스운용 매각은 일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만약 위법성이 확인될 경우 흥국생명 측이 입찰 절차 진행 금지 가처분이나 입찰 무효 소송을 제기할 명분이 생긴다. 또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역시 수사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 보류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커 자칫 딜 클로징(거래 종결) 자체가 표류할 수 있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혐의가 약하다고 결론 나더라도 공정성 논란은 딜 프로세스 신뢰와 향후 대형 매각 거래의 입찰 방식에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