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삶의 질과 존엄을 중시하는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인식 또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와 현장은 여전히 병원 중심의 임종 구조에 머물러 있어 요양시설에서의 임종돌봄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서울요양원은 시설 내에 임종실을 마련하고, 어르신들이 익숙한 생활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임종돌봄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이 아닌 요양시설에서도 존엄한 임종이 가능하다는 점을 현장에서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서울요양원의 임종실은 생애 말기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를 확인하고 요양보호사와 간호인력, 사회복지사, 영양팀, 운영지원 인력이 협력하는 다학제 구조를 통해 임종기 돌봄이 이뤄진다. 보호자가 24시간 상주하며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어 임종을 앞둔 어르신과 가족의 정서적 안정까지 고려한 돌봄이 핵심이다. 해당 임종실은 한국 전통 가옥에서 온 가족이 모여 소통하던 정겨운 공간인 ‘사랑채’로 불린다.
서울요양원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서 충분한 설명을 바탕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의사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시설 관계자는 “임종실 운영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역할은 분리된 업무가 아니라 존엄한 임종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임종실 환경 개선도 중요한 요소다. 서울요양원은 소음과 이동이 잦은 생활공간과 분리된 조용한 공간을 조성하고, 보호자가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이는 의료적 처치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생활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선택이다. 요양원 측은 “임종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인식을 현장에서 구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운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운영 기간 여러 어르신이 해당 공간을 이용했으며, 평균 이용 기간은 2~3일 수준으로 확인됐다. 보호자 만족도 조사에서는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병원이 아닌 익숙한 공간에서 이별할 수 있어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성과지만, 현장에서는 돌봄의 방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설 관계자는 “임종실은 의료적 처치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존중하는 돌봄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요양원은 이런 현장 경험을 공유하고 논의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최근 건강보험연구원과 함께 ‘노인요양시설 임종돌봄 실천 사례와 과제’를 주제로 공동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현장과 정책 연구 간 상호 소통을 통해 임종돌봄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세미나에서는 서울요양원의 임종실 운영 사례와 함께 국내 노인요양시설 임종돌봄의 전반적인 실태가 공유됐다. 해당 세미나에서는 임종돌봄이 특정한 기관의 특수 사례에 그쳐서는 안 되며, 요양 시설 전반의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외부 전문가와 타 요양원 원장이 함께 참여해 다양한 사례를 나눈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토론에서는 임종 돌봄을 둘러싼 현행 법·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현장 적용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논의됐다. 특히 임종기 돌봄이 개인과 가족 부담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책임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제도 정비와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향후 임종기 돌봄의 개념과 역할 서비스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의료와 돌봄 체계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제시됐다.
전문가들은 요양시설 임종돌봄이 초고령사회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요양원의 임종실 운영 사례는 요양시설이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삶의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