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서울 인근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짓는 게 녹록지 않다. 토지 보상부터 인프라 확보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토지 소유주는 물론 인근 지방자치단체도 규제 돋보기를 들이대며 꼬투리를 잡기 일쑤다. 충분한 보상이 없으면 공장을 들일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속내다.2019년부터 추진된 SK하이닉스 경기 용인반도체 클러스터가 수도권 산업단지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회사는 계획 확정 후 6년 만인 올해 2월에야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다. 예상 가동 시점은 2027년이다. 상수원 보호구역 규제와 환경단체의 반발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는 데 3년 넘게 걸린 영향이 컸다. 토지 보상 과정도 만만찮았다. 땅값이 크게 올랐다며 보상을 거부하는 주민을 설득하느라 착공을 다섯 차례 연기했다. 인근 지자체와의 전력·용수 인프라 조성 인허가 또한 난관의 연속이었다. 2023년 계획이 확정된 삼성전자 용인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역시 진도가 더딘 것은 마찬가지다. 2년여가 지난 최근에야 가까스로 토지 보상 절차에 돌입했다.
인허가 과정이 깐깐함에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서울 인근을 고집하는 것은 인재와 공급망 때문이다. 두 회사가 낙점한 용인은 ‘인재 남방 한계선’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이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거주 환경을 중시하는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다. 반도체 소재·부품 업체의 80% 이상이 용인과 평택 등 경기 남부에 있는 것도 선택지가 좁아진 배경으로 꼽힌다. 외떨어진 지역에 산업단지를 지으면 운영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인에 삼성·하이닉스가 들어오면 원전 15기 분량의 전기가 필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반도체 산단의 새만금 이전론과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다. 뒤늦게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너무나 뜬금없는 폭탄 발언이다. 정치가 국가 기간산업 육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기업에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