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부터 멕시코의 최고 50% 관세 제도가 시행된다.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만큼 한국도 피해 갈 수 없다. 멕시코는 최근 페소화 강세에 힘입어 국제통화기금(IMF) 정기보고서에서 세계 경제 순위 13위에 올라 한국을 앞섰다. 또한 한국에 10위 수출대상국이자 8위 무역흑자국인 핵심 시장이다. 한국 기업들은 노동임금과 물류비용, 원자재가 저렴한 멕시코를 생산·수출기지로 삼아 자동차, 철강, 전자산업 등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펴왔다.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업체는 2000여 개에 달해 멕시코 항공사는 멕시코시티·몬테레이, 서울을 잇는 유일한 직항 노선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멕시코의 개정된 일반수출입세법(LIGIE)은 17개 전략산업에서 1463개 수입품목에 5~50%의 관세를 부과한다. 한국 산업이 받을 타격은 자동차 부품(25%), 가전제품(25~30%), 철강(20~25%) 등에 집중될 전망이다. 우리 당국은 그나마 멕시코 하원이 생산비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정부 원안보다 관세 인상폭을 줄였다고 한다. 또한 한국산 제품 상당수가 중간재여서 재수출용 원부자재에 관세 감면 혜택을 주는 멕시코의 각종 수출진흥제도가 지속되는 한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멕시코는 총수출의 83~84%가 미국 시장을 향하는 만큼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취약하다. 북미 3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발효 6년을 맞는 내년 7월 1일까지 협정 재검토 협상을 진행 중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USMCA를 폐기하거나 개별 양자협정으로 대체하겠다고 위협하며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는 12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으로부터 멕시코가 탈퇴할 것을 압박했다. 중국이 CPTPP 회원국인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를 연결고리로 미국 시장에 우회 진입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법 개정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수입원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미국 무마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따라서 최근 미국이 비특혜원산지규정을 들어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한 한국 케이블 제조사와 자동차 부품사에 원산지발 고율 관세를 부과한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언제든 멕시코의 특정 무역제도가 중국 수출기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경우 그 변경을 요구하고 멕시코는 어떤 식으로든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 유탄은 차순위 무역상대국인 한국, 인도 등으로 튀고 만다.
반면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이미 멕시코와 FTA를 체결해 공급원이 자신에게로 전환되는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멕시코21세기위원회의 건의와 2005년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협상을 시작으로 FTA 협상으로 넓혀갔지만, 한국 산업과의 경쟁을 우려한 멕시코 재계의 저항에 막혀 좌절을 맛봤다. 한때 멕시코 정부는 한국이 멕시코 자동차산업에 투자한다면 재계를 설득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우리는 기아의 현지 투자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정상 회동 때마다 협상 재개가 거론됐지만 실질적인 후속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멕시코가 향후 아시아 국가들과 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미국의 동의를 구할 것을 요구했다고도 전해진다.
지금은 우리가 상황 변화를 엄밀히 분석하고 치밀한 협상 전략을 펴야 할 때다. 2018년 이후 멕시코 내 정경 역학관계의 변화, 통상 관련 기관 개편, 멕시코 정·관·산·학계의 무역구조 다변화 요구, 직접투자국으로서 한국의 위상, 멕시코 내 한류열풍 등은 유리해진 환경이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최근 중국의 보복 가능성을 의식한 듯 “그 어느 국가와도 척질 생각이 없고 중국, 한국, 인도와의 대화를 열어두고 있는데 조약, 무역협정 등 어떤 기제로 귀결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도는 즉각 FTA보다 개방 범위가 한정된 특혜무역협정(PTA) 제안으로 응수했다. 우리에게는 역설적으로 20년 묵은 FTA를 관철할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 정부는 이 기회를 살리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협정 수준도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실용적 접근법으로 협상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