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컬리·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의 이른바 ‘늑장 정산’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직매입 거래 대금 지급 기한을 현행 60일에서 30일로 절반 단축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납품업체의 대금 회수 불안을 해소하고 자금 유동성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28일 납품업체 권익 보호와 거래 안정성 강화를 위해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상 대금 지급 기한을 대폭 단축하는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직매입 거래의 대금 지급 기한은 상품 수령일로부터 현행 60일에서 30일로 줄어든다. 다만 한 달 매입분을 한꺼번에 정산하는 ‘월 1회 정산’ 방식은 매입 마감일(월 말일)로부터 20일 이내 지급하도록 예외 규정을 두기로 했다. 백화점 등에서 주로 활용되는 특약매입·위수탁·임대을 거래의 경우에는 판매 마감일로부터 지급해야 하는 기한이 기존 40일에서 20일로 단축된다.
이번 조치는 일부 대형 유통업체들이 법이 허용한 최장 기한에 맞춰 대금을 지급하며 이를 사실상 자금 운용 수단으로 활용해 온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특히 티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 이후 납품업체의 대금 회수 불안이 확산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공정위가 132개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업계 평균 대금 지급 기간은 직매입 27.8일, 특약매입 23.2일로 상당수 업체는 법정 기한보다 빠르게 대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반면 일부 온라인 쇼핑몰과 전문 판매점 등 9개 업체는 특별한 사유 없이 법정 상한에 근접해 대금을 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별로는 쿠팡(52.3일), 다이소(59.1일), 마켓컬리(54.6일), 홈플러스(46.2일), M춘천점·메가마트(54.5일), 영풍문고(65.1일) 등이 업계 평균보다 현저히 늦은 정산 관행을 유지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쿠팡은 2021년 직매입 대금 지급 기한이 법으로 60일로 법제화되자, 기존 50일이던 지급 기간을 오히려 늘린 사례로 지적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부 유통업체가 대금을 장기간 보유하며 이자 수익을 얻거나 자금 유동성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며 “현행 법정 상한이 과도하게 길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만큼 업계 평균 수준으로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다만 납품업체의 채권 압류나 연락 두절 등 유통업체의 귀책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지급 기한을 넘길 수 있는 면책 규정도 함께 마련할 방침이다. 이번 개선안은 내년 초 법률 개정안 발의를 통해 추진되며, 유통업체의 정산 시스템 개편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 법 공포 후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