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흔한 교육 안내 책자도 없었어요. 바로 실전 투입 느낌이랄까? 뭐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요. 알려주지 않은 일을 못 했다고 짜증을 내고,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어요. 다음번에 이직한다면 업무 인수인계 확실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유통 중소기업 7개월 차 직원 24세 A씨)
직장 내 괴롭힘처럼 대놓고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은근한 폄하'와 '암묵적 비하'였다. 신입사원들은 상사의 무심한 사생활 질문이나 가이드라인 없는 업무 지시를 심각한 '무례 행동(Incivility)'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퇴사와 이직의 결정적 사유가 된다고 입을 모았다.
28일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연구팀(조희숙, 송영수)이 최근 발표한 'Q 방법론을 활용한 조직 내 무례 행동 피해 사례 유형 탐색' 논문에 따르면, 신입사원들이 느끼는 무례함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됐다. 연구팀은 입사 2년 미만 신입사원 30명을 대상으로 52개의 진술문을 분류하게 하는 'Q 방법론'을 적용해 이들의 주관적 인식을 수치화했다.
○ "공사 구분, 명확한 가이드라인 원해"
가장 많은 신입사원이 속한 유형은 제1유형인 '공과 사 경계형'(33.26%)이었다. 이들은 카카오톡 등 개인 SNS를 통한 단톡방 생성(표준점수 0.64), 금전 문제 조언(0.57), 출신 학교 및 지역 질문(0.33~0.36) 등을 심각한 무례로 인식했다. 한 대기업 홍보팀의 5개월 차 여성 사원 A씨는 회의 시간마다 "A씨 어느 학교 나왔지? 공대였나? 이거 A씨가 하면 좋겠네"라며 학벌을 들먹이는 상사 때문에 괴로워했다. 단둘이 있을 때는 묻지도 않으면서 꼭 남들이 보는 앞에서 학벌을 언급하며 일을 시키는 행위가 신입사원에게 큰 정서적 타격을 줬다.교육 관련 회사의 한 남성 신입은 서면 응답에서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걸 들키기 싫어 부모님이 모두 계신 척했습니다. 나중에 한부모 가정인 사실을 우연히 언급했을 때 나를 거짓말쟁이로 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 굳이 가족 얘기를 왜 꺼내서 저를 한심하게 만들까요?"라며 울분을 토했다. 연구진은 "제1유형에 포함된 신입들은 공적인 업무와 조직 이외 사적인 영역에 대한 경계를 명확히 보이는 유형이며, 회사 내에서 특별한 대인관계 및 교류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2유형은 '교육 부재형'(7.17%)이었다. 이 분류에 포함된 신입들은 조직 내에서 받아야 할 교육을 못 받거나, 업무 프로세스의 불명확함에 분노했다. 입사했는데 사수가 존재하지 않거나(0.71), 명확한 데드라인 없이 업무를 던지거나(0.61) 나중에 "왜 안 했냐"며 짜증을 내는 행태가 대표적이었다. 한 응답자는 "취업했을 때 잠깐 기뻤지만, 알려주지도 않은 일을 못 했다고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이직 의사를 밝혔다. 연구진은 "제2유형은 정해진 틀이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는 곳에서 조직 생활을 할 경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무례행동으로 퇴사를 생각하는 특성을 보였다"고 했다.
○ "팀장이 대학 팀별 과제 빌런 같아…감정노동 지쳐"
주목할 만한 점은 제3유형인 '감정노동형'(6.53%)의 이야기다. 이들은 타인 앞에서 고함을 치거나(0.34), 상사의 험담에 호응을 강요받는 상황(0.67)에서 모멸감을 느꼈다. 특히 자신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과민반응'이나 '예민함'으로 치부하는 행위에 큰 상처를 입었다. 22살 중견기업 여성 신입사원은 "실수했을 때 메신저로 혼낼 수도 있는데 굳이 팀원들이 다 있는 앞에서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증언했다.연구진은 "제3유형에 속한 참여자들은 조직 내에서도 정서적 친밀감을 유지하고, 대인관계 폭을 높이고 싶어 하기 때문에 1유형과 대립하는 유형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상사의 불성실함에 냉소적인 제4유형 '월급 루팡형'(5.52%)이었다. 이들은 매번 지각하는 상사(0.57), 신입사원의 성과를 가로채는 행위(0.54), 외근 중 사수가 개인 볼일을 보러 사라진 뒤 퇴근 직전 전화를 걸어 "회사 가서 내 카드 좀 찍어달라"고 요구한 사례(0.38)는 신입사원에게 깊은 냉소를 안겼다. 금융 대기업에서 일하는 한 남성 신입은 "때학교 때 팀별 과제 프리라이더들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도저히 신입이 할 일이 아닌데 신입사원에 일을 넘기고 월급 좀 먹는 팀장들에 기가 찼다"고 했다. 회사 공용 물품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탕비실 음료를 가져가는 일도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연구진은 제4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책임감이나, 약속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맡은 임무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높은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제1유형에도 많은 동의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런 저강도의 무례함이 '복수의 악순환'을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사회교환이론에 따르면 무례함을 경험한 신입사원은 이를 되갚아주려는 보복 심리를 갖게 되며, 결국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갉아먹는 고강도 갈등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조직 내 무례행동은 가해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지속성이 강하다"며 "권력 하위에 있는 신입사원들이 스트레스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도록 조직 차원의 적극적인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