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이 하청 근무일수 정하면 사용자?

노동부가 사용자성 판단 요건으로 제시한 구조적 통제에는 원청이 하청의 영업 일수를 일방적으로 정하고 지키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작업 시간과 근무 방식을 결정하는 경우가 포함된다. 조직적 편입·경제적 종속은 하청 직원이 원청 직원과 함께 하나의 작업 집단을 이뤄 공정을 수행하거나, 하청 매출이 대부분 특정 원청에 의존하는 경우 등을 뜻한다.
꼭 두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도 노동안전, 작업환경, 복리후생, 근로시간, 임금·수당 등 사안별로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했다면 해당 사안을 두고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다. 하청 근로자가 원청이 소유·관리하는 휴게·복지시설을 이용하는 경우(작업환경), 원청이 하청 직원의 인원 배정, 근로·휴게시간, 휴가 등을 결정하거나 승인권을 행사하는 경우(근로시간),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성과급 지급 여부와 규모를 결정하고 재원도 원청 예산에 연동한 경우(복리후생)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교섭 대상이 되는지 관심을 모은 임금·수당은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봤지만 원청이 투입되는 하청 근로자의 인원과 시간을 정해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임금 인상률, 수당 지급 기준을 제시할 때는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지침에 따르면 산업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내 하도급은 대부분 구조적 통제로 인정돼 원청이 하청노조의 사용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하청이 계약을 어겨서 원청이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등 통상적 행위도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구조적 통제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거제, 울산 등 각지에 거점을 둔 국내 조선 3사는 하청이 사실상 100%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사례가 많다”며 “조선업의 물량도급 하청에 대해선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경영상 판단도 파업 가능
노동부는 쟁의행위 대상에 대해 근로조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에 한해 쟁의행위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르면 인력 감축 및 전환 배치가 예정된 정리해고, 구조조정은 쟁의행위 대상이 된다.노동부는 “기업의 공장 증설과 사업장 합병·분할·양도·매각 등 사업 경영상 결정 자체만으로 교섭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실제로는 합병 등 주요 사업 경영상 결정이 ‘인력 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국 쟁의행위 대상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침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 정년 연장과 관련된 ‘기준 설정’ 요구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자동차산업 등에선 기존 제조에서 자율주행, 로보택시 등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며 사업 재편이 빈번한데 노동부의 해석은 신속한 산업 재편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도 “불황으로 구조를 재편하고 있는데 공장 통폐합 과정에서 원청이 구조적 통제를 행사하는 주체로 인식될 수 있다”고 했다.
노동부는 행정예고 기간인 내년 1월까지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보완 작업을 거친 뒤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곽용희/양길성/안시욱 기자 kyh@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