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지난 16일 선고 공판에서 이같이 밝히며 대외무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전직 해군 중령 A씨를 잠수함 기술 유출의 주범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보안망을 뚫고 빼돌린 설계 도면 등 기밀 자료와 퇴직한 기술 인력 등 취업을 알선하는 수법으로 대만 1호 잠수함인 ‘하이쿤’ 건조 과정에 활용했다고 봤다.

◇대만에 건너간 韓 인력만 100여 명
25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정보원은 2020년 대만이 국내 잠수함 기술을 불법 탈취해간 사실을 인지했다. 앞서 대만은 자국산 잠수함 개발(自製防禦潛艦·IDS) 사업의 수행사로 B사 등을 선정하고 2019년 계약을 맺었다. 2016년 취임한 차이잉원 전 총통이 자체 잠수함 건조를 공약으로 내세운 지 약 3년 만이다. 이 사업은 대만에선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황슈광 국가안전회의(NSC) 자문위원이 주도했고, 국영 조선소인 대만국제조선공사(CSBC)가 건조를 맡았다. A씨가 대표를 맡은 B사는 잠수함 장비 설계·제조사로 대우조선해양 기술자를 끌어들였다. 이때 설계 도면 등 기밀을 함께 확보할 수 있었다.이후 수년간 대우조선해양 및 협력사 출신 잠수함 기술자 수십 명을 영입했고 총 100여 명의 국내 방산 종사자가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기술자 간의 다툼이 불거졌고 기술 유출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경남경찰청이 B사 등을 상대로 수사에 나섰다.
현지에서 일한 기술자들은 본지에 “대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도면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상황에서 해군 소령 출신 기술자 C씨는 오히려 대만 측에 “장보고함 기술자를 섭외해 올 테니 거액을 달라”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대만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됐다. 하이쿤 사업에 참여한 또 다른 기술자 D씨는 “대만 고위직로부터 장보고함 기술과 함께 귀화하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며 “요구를 거부하니 곧바로 해고당했다”고 전했다.
대만은 지금도 2~8호를 건조하기 위해 약 3000억대만달러(약 13조9000억원)의 예산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일부 한국 기술자가 현지에 남아 활동 중이다. 2023년 9월 진수된 1호 하이쿤은 ‘깡통’이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결함 논란에 휩싸였고, 현재 보완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하이쿤은 진수 이후 21개월 만인 지난 6월에야 첫 해상 시험을 진행했다.
◇경영난 속 기술·인력 ‘줄줄’
A씨 등이 기술 유출을 저지른 2019년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 기술자를 포함한 핵심 인력 이탈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2022년 12월 한화그룹에 인수되기 전까지 장기간 경영난을 겪었다. 2001년 워크아웃 졸업 이후에도 산업은행의 관리 체제가 20여 년간 이어졌고, 조선 경기 악화가 겹쳐 임금 동결과 구조조정이 반복됐다.떠밀리듯 나온 직원 중 상당수가 이때 대만으로 건너갔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한 E씨는 “수년간 월급이 오르지 않아 40~50대 가장이 생활고를 겪었다”며 “해외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오라는 유혹을 이겨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보안 체계 역시 사실상 붕괴 상태였다. 사내망에 보관된 도면을 개인 이메일로 전송해 노트북에 저장하는 것조차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규정상 관리·감독자가 수시로 사외 유출 여부를 점검해야 하지만,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이를 수행할 인력조차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출장 중 기밀이 담긴 노트북을 분실한 사례가 수차례 나왔지만 별다른 실태 점검 없이 넘어가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을 종합해 대우조선해양을 “실질적인 피해자”로 규정했다.
이에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사실이 없다”며 “보안사고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철오/김영리 기자 cheol@hankyung.com
